매일신문

2002 월드리뷰-(4)서유럽 우파바람

올해는 서유럽에서 우파의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불었다. 주요 원인은 경제난과 이민 유입과 이에 따른 범죄증가에 있었다. 그러나 거세던 우파 바람도 독일 총선과 다른 나라의 총선에서 일단 주춤한 양상을 보였다.

지난 5월 6일 네덜란드 중부 힐베르숨시의 3FM 라디오 방송국 주차장에서 울린총성 6발은 서유럽 우파바람의 정점을 향한 서곡이었다. 극우파 리스트당은 반이민정책과 공격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지난 3월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 지방의회 선거에서 34%의 득표율을 올린데 이어 9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강세를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리스트당의 지도자 핌 포르투완(53)을 쓰러뜨린 이날의 총격은 극우파 바람의강도를 알린 신호탄이 됐다. 리스트당은 결국 총선에서 제2당으로 부상해 제1당이된 온건우파 기독표민주당과 하는 우파연정에 4명의 각료를 참여시켰다. 8년간 집권해온 좌파 노동당 정권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선거 1차투표에서는 극우 국민전선의장 마리 르펜 당수가 17%를 득표하며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수를 물리치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나란히 2차투표에 진출해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최대의 정치 이변을기록했다. 그는 포르투완 암살사건 직후에 열린 2차투표에서 80%가 넘는 득표율을기록한 시라크 대통령에게 참패하기는 했지만 1차투표 때보다 득표율을 높였다.

후보단일화에 성공한 프랑스 우파는 반극우의 물결을 타고 대통령직, 상원, 헌법위원회에 이어 하원, 내각 등 주요 정치기구를 모두 손안에 넣었다. 우파가 대통령직과 하원을 동시에 지배하기는 지난 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초선 이후 95-97년의 2년여를 제외하면 처음이다. 지난 5년 동안 좌우동거의 굴레 속에서힘없는 대통령에 머물렀던 시라크 대통령도 상하원을 장악함으로써 제5공화국 사상가장 강력한 대통령 중 한명으로 거듭났다.

지난 97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진보 정상회담을 창설했을 때만 해도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가운데 11개국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오스트리아에서 극우파인 외르크 하이더 당수가 이끄는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한 이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덴마크, 포르투갈,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 잇따라 우파가 정권을 잡았으며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우파가 승리했다.

이처럼 서유럽에 우경화 바람이 분 이유는 그 동안 좌파 정권 하에서도 만성적인 고실업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고 범죄가 늘어나 사회가 불안한 가운데 외국 이민의 유입으로복지혜택이 줄어들고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과 불만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서유럽을 휩쓸던 우파 바람은 독일 총선을 계기로 제동이 걸렸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적-녹'연정이 불안하기는 해도 일단 자리를 지켰고 스웨덴의 예란 페르손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도 재집권에 성공했다.

오스트리아의사회민주당도 연말 선거에서 재집권해 3년전 극우파의 총아로 떠올랐던 하이더 당수는 당시 획득했던 득표율 27%의 3분의2를 잃는 참패를 기록하며 정치무대를 떠났다.네덜란드에서는 포르투완이 이끌던 리스트당이 지리멸렬해 지면서 연정에 참여했던각료들이 사임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는 이제 유럽정치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좌에서 우로, 또는 우에서 좌로 변하던 이른바 자이트가이스트(시대사조)가 사라지고 지도자의 정치철학보다는개인적인 매력이, 이념보다는 반이민, 반미 정서가 지배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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