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당 대변인단 비방전

한나라, 민주당 대변인단의 입이 점입가경이다. 대선이 종반전으로 치닫자 양당 대변인단이 상대 후보를 겨냥, 비방과 막말을 쏟아내며 자당 후보의 돌격대 내지 나팔수역을 자임하고 있다. 예측불허 판세가 이어지면서 대변인단의 논평 수위 또한 한층 높아지고 있어 "차라리 대변인실을 없애자"는 말까지 나온다.

◇대변인 수와 논평의 양=두 당의 과열 비방전은 논평의 양을 봐도 알 수 있다. 두 당은 요즘 하루 평균 많게는 20여건에 달하는 (정책)성명과 논평, 보도자료, 소식지를 쏟아내고 있다. 대선 전만해도 사안에 따라 5건 안팎에 불과했던 점을 상기하면 논평이 정쟁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대변인단의 인적 구성도 팽창 일변도다. 대변인 수가 많을수록 자연 논평수도 덩달아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한나라당은 선대위 대변인(남경필.조윤선)이 2명이며 선대위 부대변인 7명을 포함, 부대변인 수가 26명에 이른다.

민주당 역시 공동선대위 대변인(이낙연.이미경.문석호.김행.홍윤오)이 5명이나 되며 상근 부대변인 9명을 포함하고 16개 시.도마다 있는 부대변인 수를 더하면 산술적으로 30명에 이른다. 자연 양측 대변인단 수는 물경 60명에 육박한다.

◇논평의 종류=각 당 대변인단의 논평도 각양각색이다. 다짜고짜 인신공격을 해대는 욕설수준의 논평이 있는가 하면 자당 후보를 옹호하는 논평, 짐짓 상대 후보를 조롱하는 훈계형 논평, 관련 사실을 줄줄이 늘어놓는 나열식 논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 한달새 인신공격형 논평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사기.공작 전문가','정치공작 탈레반','도덕 결핍자','연체동물 소신','특권층','위장서민','원칙 파괴자','욕쟁이','무식꾼','럭비공' 등 다양하다. 어감으로 볼 때 한나라당의 논평이 상대적으로 민주당보다 거칠다는 견해도 나온다.

한나라당 황제현 부대변인은 13일 노무현 후보를 '막가파'로 비유한 채 "민주당과 노 후보는 막가파인 듯하다. 흑색선전 향응제공 등 각종 불.탈법에 앞장서고 있다"며 "노 후보의 불법 선거자금 50억원을 압수해야 한다"고 흥분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미경 대변인은 "손녀딸을 원정출산시켜 미국 시민권자로 만들고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이회창 후보는 부산사람 기질에 어울리지 않는 후보"라 성토, 인신공격했다.

논평이 상대당 정견이나 정책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당 후보를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우리당 후보는 진정한 의미의 대북 평화정책을 추구한다"면서 "눈치만 보고 질질 끌려다니는 김대중.민주당 정권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자화자찬했다.

반면 민주당 이평수 부대변인은 지원유세에 나선 정몽준 통합21 대표를 지칭, "정 대표와 노 후보는 단일화 과정에서 정정당당한 승부,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으로 정치불신을 일소했다"고 추켜세웠다.

이른바 충고형 논평도 있다. 짐짓 나무라는 투지만 속내는 비꼬기 일색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변인은 최근 한나라당의 폭로공세를 비난하면서 "이회창씨는 대통령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잔혹한 짓을 내버려 둘리가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이 후보는 페어플레이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한다. 반면 박방희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중국 소동파의 시구를 인용, "옛말에 '입 놀리기는 쉬워도 실행키는 어렵고, 실행키는 쉬우나 성공키는 어렵다'고 했다"며 "노 후보가 귀담아들어야 할 경구가 아니겠나"하고 훈계조로 비꼬았다.

나열식 논평은 약간 지루하다는 것이 흠이지만 정보의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변인은 이달초 이 후보 장남 정연씨의 병역면제 신체조건을 다룬 '179cm, 45kg 인간 미이라'라는 책을 열거하면서 "대법관 댁에서 장남을 세계 의학계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정한 170cm, 45kg의 몸을 만들고 이를 이유로 군대에 안보낸 이회창 후보 부부께 의학상이라도 드려야 할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에 맞서 채성령 한나라당 부대변인도 노 후보가 쓴 '여보, 나좀 도와줘'라는 책의 한 부분을 인용, "노 후보의 여성관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면서 "가면을 벗으라"고 공격했다.

◇법정 다툼까지=사정이 이렇다보니 양당 논평이 설화(舌禍)를 낳다가 결국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생겨난다. 지난 13일 한나라당은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김대업 테이프 조작사건과 관련, '이 대변인이 진위를 확인도 않고 논평을 통해 허위사실을 적시, 여론을 호도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처럼 양측이 서로 '네탓' 입씨름을 벌이다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가 적지않아 현재 법정소송이 진행중인 경우도 10여건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당 한 관계자는 "대변인단의 거친 논평이 정쟁을 양산하고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을 주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기자들에게 기사를 제공하고 촌철살인의 즐거움도 주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처럼 서로 목을 겨눈 정쟁식 논평이 아니라 절제하면서도 한마디 한마디가 따가운 논평이 그립다"고 말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