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성보호법 개정 1년 현주소

"출산휴가 90일도 눈치 보이는데 연달아 육아휴직까지 쓰면 완전 왕따 당할겁니다". "우리같은 비정규직은 모성보호니 뭐니 해당이 안돼요. 나하고는 관계없는 제도이니 사실 별로 알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저는 복지가 잘 되어있는 은행에 다닙니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신청한 동료는 선배 한명뿐입니다. 자신이 빠지면 동료나 선후배의 일이 가중돼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주저하다가 신청했지요. 그런데 솔직히 그 선배가 1년 뒤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2일 열린 대구여성회(회장 안이정선)주최 모성보호관련 법안 개정 1주년 기념'대구지역 모성보호제도 활용실태'토론회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지적됐던 모성보호제도의 미미한 활용률과 함께 실제 사업장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약 한달간의 설문과 면접조사로 실시된 실태조사는 특히 계약직, 연봉제 등 비정규직 고용조건의 여성 근로자들에게 모성보호제도의 정착이 그리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출산·육아휴직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규직은 '육아휴직·출산휴가 모두 자유롭다' 3.5%, '출산휴가만 가능' 60.5%였으나 비정규직은 '출산휴가만 가능' 21.4%, '전혀 사용할 수 없다'가 78.6%에 달해 정규직과 첨예한 대조를 보였다.

그러나 정규직이라해도 중소기업의 경우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어 출산휴가도 쉽지 않았다. 영세사업장의 경우는 출산휴가시 퇴직을 관행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체인력을 본인이 직접 구하고 무급으로 휴가를 보낸 경우도 있었다.

가사나 육아문제에 부딪힐 경우 사직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여성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20대는 48.1%, 30대는 40.2%가 '그만두겠다'고 응답해 9.1%에 그친 40대와는 차이를 보였다. 이는 가임기에 해당되는 낮은 연령대일수록 가사·자녀문제가 직업단절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휴가복귀후 임금과 지위 등 직장생활의 변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규직은 52.6%가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고 답한 반면 비정규직은 71.4%가 '출산휴가를 사용하기 위해 퇴사를 해야 했다'고 답했다.

여성들은 그러나 정규직(93.8%).비정규직(95.2%) 모두 휴가사용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고 답했고, 모성보호 정착을 위해서는 법적강제(36.2%), 사회적 인식변화(31.5%), 직장탁아시설(12.1%) 등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김재경 대구여성회 부설 여성노동센터 대표는 "육아문제는 이제 가정만의, 또는 여성만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공동책임의 문제라는 합의를 이끌어내야할 때가 되었다"며 "현재 전체 여성근로자의 70%가 넘는 비정규직에 대한 모성보호 확립이 제도의 성패를 판가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지역 여성근로자들은 개정된 모성보호 관련법의 혜택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12일 대구여성회 강당에서 열린 '직장과 가정 양립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모성보호법이란=모성보호법률은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등 모성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을 말한다. 일하는 여성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11월부터 개정 시행되고 있다.

개정된 모성보호법의 핵심은 '출산휴가 확대'와 '유급휴직제' 도입이다. 예전 임신 중인 여성이 60일의 휴가를 낼 수 있었지만 90일의 출산휴가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90일의 급여 중 60일은 사업주가 부담하며 나머지 30일은 고용안정기금에서 부담한다.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키우는 근로자는 영아 양육을 위해 아내와 남편 중 한사람이 유급 육아휴직(월 20만원)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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