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트로트

12월은 하루하루가 눈깜짝할사이 지나간다.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일까, 여느 달보다 두세 배는 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바야흐로 송년 시즌. 한 해의 기쁨도, 괴로움도, 가는 세월에 훌훌 실어보내느라 곳곳에서 망년회로 떠들썩하다. 직장 망년회에서부터 각급 학교 동문회, 이런저런 단체들과 동호인 클럽, 각 지역 향우회에다 계모임까지….

사람을 만나면 일단 혈연 지연 학연을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사회인 만큼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온갖 연(緣)들이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동시다발로 나타난다.

대인관계가 활발한 사람들은 하루저녁에도 몇 차례씩 열리는 망년회에 얼굴 내미느라 밤무대 연예인마냥 동동걸음쳐야 한다.

망년회 풍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밥 먹고,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평소 노래와 거리 먼 사람이라도 이맘때면 슬며시 노래 한두 곡쯤 연습삼아 부르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망년회자리에선 늘 한가지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된다. 나이, 남녀, 지역, 빈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는 그것. 이른바 뽕짝으로도, 유행가로도 불리는 트로트 노래의 애창이다. 평소엔 TV 가요무대 노래 정도로 여겨지던 트로트 노래가 이맘때면 돌연 전국민의 애창곡으로 사랑받는다.

힙합세대도 흥이 무르익으면 언제 배웠는지 '울려고 내가 왔던가~'로 목젖을 떨고, 평소 모차르트니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즐겨듣는 클래식파들도, 점잖은 CEO들도 끝내는 '천둥산 박달재를~'에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를 구성지게 뽑아낸다.

세계 각국의 전통가요들은 저마다 독특한 체취를 지니고 있다. 포르투갈의 파두(Pado)는 애잔한 호소력으로, 프랑스의 샹송은 감미롭게, 이태리의 칸초네는 절절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으로, 중국의 민꺼(民歌)는 기교 넘치는 고음으로, 일본의 엔카(演歌)는 애상적인 분위기로 가슴에 스며든다.

트로트는 엔카와 많이 닮아 왜색으로 폄하당하기도 하고 저급 음악으로 멸시당하기도 하지만 사실 트로트만큼 국민 다수의 가슴에 친근하게 와닿는 노래도 없다. 고향의 흙내음과 애달픈 사랑을 담은 감칠맛 나는 노래들이 사막같은 세상살이의 우리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안겨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익혀두면 평생 잊지 않는 것이 자전거타기와 수영이라는데 아마 트로트 노래도 그렇지 않을까오늘밤도 크고작은 망년회 자리마다 한해의 시름을 털어버리느라 사람들은 목청껏 트로트를 열창하겠지.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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