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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여성아카데미 강연 최희준

젊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30대 중반의 청년을 연상할 만큼. 그를 원로가수라고 불러도 될까.노래인생 42년. '가요계 신사', 서울대 법대 출신 '학사 가수' 등의 특이한 이력과 '가요계 신사' '찐빵' 등의 애칭으로 수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최희준(66).

그가 최근 국회의원의 배지(1996년 새정치 국민회의소속 15대 국회의원(경기도 안양)에 선출돼 5년간 의정생활을 했다)를 떼고 '본업'으로 복귀했다. 지난 11월 서울에서 가진 '2002 최희준 가을밤 콘서트'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지난 95년 가요인생 35주년 기념공연이후 7년만의 '귀향'이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죠. 의정활동 동안에도 가수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어요. 그래도 무대에 다시 선다는 게 무척 긴장됐죠. 다행히 목소리의 변화는 없었지만 호흡은 괜찮을까, 감정 전달은 잘 될까…. 감기 조심하려고 사람 많은 곳도 가렸어요".

콘서트는 성공적이었다. 밤 10시라는 늦은 시간에도 팬들은 '老하숙생'의 복귀를 축하했다. 전인권 박상민 이은미 신효범 정훈희 한영애 노사연 권인하 등 정상급 게스트들이 무대를 빛내줬다. 그의 음악인으로서 인생이 얼마나 내실있는 것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복고 졸업-서울대 법대생' 예정된 엘리트 코스를 마다하고 노래가 좋아 '카수'가 됐다. "당시로선 쇼크였죠. 주위 분들도 너무 오버하지 말고 곧 돌아와야 하지 않나 걱정들 하셨죠. 그런데 이게 10년이 지나도록 히트곡이 계속 나오니 발을 빼기도 뭐하잖았겠어요?"

1958년부터 미 8군에서 노래를 하던 최희준은 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데뷔, '하숙생' '빛과 그림자' '진고개 신사' '길 잃은 철새' '월급봉투' '나는 곰이다' '옛 이야기' '이별의 플랫폼' '종점' 등의 인기곡을 남겼다. 그동안 음반 취입곡만도 240여곡. 그 중 상당수 곡은 '하숙생'(KBS 라디오), '길 잃은 철새'(TBC 라디오)처럼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삽입곡이었다. 그는 이를 '(필요에 의해 제작된)주문상품'이라 부르며 애써 낮췄다.

그의 지음(知音)은 곽규석, 길옥윤, 이봉조, 현미, 한명숙, 이미자, 남일해, 위키리 등. 노래로 일세를 풍미한 한국가요계의 스타들이다. "사람 사는게 제 노래 '빛과 그림자'같아요. 그래도 저는 긴 세월을 노래와 더불어 살 수 있었던데 하느님께 감사드릴뿐입니다".

의정활동동안 가수활동은 뜸했지만 대중문화에 남긴 성과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클럽의 합법화', 요식업소에서 노래를 자유롭게 부를 수 있도록 법적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조그만 시행령 하나 고치는데 3년이나 걸렸어요. 그래도 덕분에 미사리, 홍대앞, 대학로 라이브 클럽같은 곳에서 노래하는 후배들한테 고맙다는 이야기 많이 듣고 있어요".

낭만이 통하던 그 시절을 거쳐온 그에게 요즘 가요계는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음반PR비 같은) 잘못된 관행은 상업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켰기 때문에 나온 병폐죠. 지나친 경쟁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수는 자존심을 지켜야합니다. 노래와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축복받은 일입니까".

그는 17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린 매일신문 주최 '매일 여성 아카데미'에 강연자로 자리했다. 주제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인생의 나그네길'. "아직 내 인생을 돌아볼 나이는 아니다"라고 말한 그는 청중을 위해 살아온 인생을 담담하게 간추렸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오래 오래 노래와 함께 있고 싶고 팬들의 기억속에 남는 가수가 되는 거예요".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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