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인권 검찰

수년간 추적해왔던 흉악범을 쫓던 형사가 '정당방위'의 틀을 만들어 놓고 바로 사살해 버리는 게 문제가 된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다리 부위를 쏘아 충분히 검거할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도 그 형사는 범인을 '즉결처분'해 버린 것이다. 검거해서 법정에 세우면 판사가 두둑한 보석금을내는 조건으로 또 풀어줄게 뻔한 상황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잉방어'가 문제가 돼 징계위에서 파면이란 처분을 받고 경찰배지를반납하고 경찰서 문을 나서는 그의 얼굴엔 무거운 짐을 덜었다는 안도감과 홀가분함을 함께 만끽하는 모습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법과 수사현실과 인권이 서로 상충되면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모순된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리얼하게 전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사망사건도 구속된 검사가 4년간 추적해온 조직폭력배의 끔찍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다 일어난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고문' 이전의 그 검사가 교활하게 수사망을 피해가는 '지능적 조폭'을 잡으려는 사회정의감이나 그 충정심은 인정해줘야 한다.문제는 검찰수사관행이었다.

조직폭력배나 마약사범 등은 사실상 지금까지 용의점이나 첩보하나를 근거로 용의자를 체포해 족치는 수법이 근간을 이룬게 현실이었다. 또 그렇게 거칠게 다루지 않으면 자백받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사건도 피의자가 사망했으니 문제가 됐지 상처정도로 끝났으면 그 검사는 어려운사건을 해결해낸 유능한 검사로 언론의 찬사를 받을수 있었던 정황이었다. 그 천당과 지옥의 한계상황에 '고문'이 문제될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수사진들의 머리속에는 '사건해결'밖에없었고 미국의 형사들 머리속엔 범인을 쫓으면서도 '변호사와 인권판사'가 각인돼 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인권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것이다.'고문사망'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수사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전기가 됐고 먼 시각으로 보면 어차피 치러야 할 홍역이다.

○..그래서 진술거부권 고지가 없고 변호인접견을 제한한 자백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법무부의 '인권보호 수사준칙'까지 마련됐고 곧피의자인권을 크게 신장시킬 형사소송법도 개정할 것이라고 한건 퍽 고무적이다.

문제는 내사단계를 거쳐 증거를 충분히 확보할때까지의 장시간 수사패턴에 따른 인력이나 장비보강에 따른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이것도 선언적 의미밖에 없음을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건 수사진의 뇌리에 늘 '피의자 인권'이 자리잡을 때까지 어느정도의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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