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추모열기를 선거참여로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두 여중생의 추모 행사가 시민들의 참여 열기 속에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대구 행사에서는 1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길놀이 공연을 시작으로 희생된 넋을 위한 위령굿, 무죄평결 무효화 및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바라는 자유발언 등으로 이어졌다.

참가한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언 손에 촛불을 들고 반월당, 영남대 네거리를 거쳐 캠프워커까지 시위를 한 후, 미군부대 앞에서 대형 성조기 소각등으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도 수만명의 시민들이 추모 행사에 참여하여 촛불의 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행사는 서울이나 대구 등의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의 소도시와 농촌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같은 날 경북의 안동, 예천, 영주, 문경, 봉화, 청송 등의 지역민들도 안동에 모여 추모행사를 벌였다고 한다.

또한 하루 전날 대구에서 많은 신부와 수녀들이 모여 추모미사를 거행한 것처럼 사회단체, 종교단체, 청소년단체, 예술단체, 농민단체 등 다양한 소집단별 추모 집회나 다양한추모 행사들도 연일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모 행사의 확산은 오늘날 시민들이 사회의식을 상실한 채 탈정치화되었다는 주장이 틀렸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흔히 현대인들은 물질문명에빠져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개인화된 생활양식 속에서 사회나 민족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월드컵경기 당시 시민들의 대규모 응원과 더불어 이번 추모 행사에서 보여준 참여 열기는 시민들이 어떤 계기적 조건이 주어지면 사회와 민족을 위해 엄청나게 폭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번 추모행사는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국의 각 지역과 각계각층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번 추모 행사가 우리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즉, 6월 민주화운동이 국내 정치사에서군사독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계기를 이루었다면, 이번 추모 행사는 국제 정치사에서 외세의 직·간접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주권국가로 넘어가는계기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모 행사는 미국에 대한 적대 감정이나 국제정치 관계의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되며,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평화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금기시 되어 왔던 주한 미군의 문제점들을 국민에게 알리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미군에 의한 두 여중생의 희생에 대한 미국 측의 사과 및 사고 유발 미군에 대한 처벌과 더불어 일방적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평등한관계로 전면 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이러한 참여의 열기를 반영하여 시민들의 탈정치화 경향을 불식시키고, 잠재된 사회의식을 일깨워나가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낙후성은 민주화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역사나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참여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시민들을 동원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 즉 사회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의식과 더불어민주적 합의와 참여를 통한 대안적 문제해결 능력을 함양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자신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개인주의화 경향을 가지게 되었으며,특정한 계기가 없는 한 사회적 참여에는 극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시민들의 개인주의화와 소극적 사회참여는 그 동안 거듭된 선거의 투표율 하락 경향에서도 여실히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이러한 피동성으로는 민주정치의 활성화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난날의 경제성장은 독재정권에 의한국민들의 강제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할지라도, 앞으로의 경제발전은 민주정부에 의해 고무되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 참여는 민주정치와 경제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추모행사의 열기가 선거 참여로 이어져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이룩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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