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2문화인물-(1)박상진 시립국악단상임지휘자

'다사다난'이라는 말로 맺을 수밖에 없는 한 해의 끝자락.누구든 상념에 젖어 한 해를 돌이켜 볼 것이지만 박상진(대구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동국대 교수)씨는 상념의 겨를도 없이 앞만보고 달려왔다.

사실 박씨의 올 한 해 작업은 타 장르에 비해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대구의 국악계 모습을 바꿔 놓았다고 할 만큼, 중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매번 같은 밥상을 차린다면 아무도 그 상 앞에 앉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리는 사람도 힘이 더 듭니다".

박씨는 연주회를 '밥상' 차리는 것에 비유했다. 대구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라는 중책을 맡은 만큼 처음부터 다른 밥상을 차리기로 마음 먹었고, 박씨의 밥상차리기는 '국악'을 살리기 위해 '국악'의 틀을 깨는 역설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3월, 상임지휘자를 맡은 뒤의 첫 연주회. '달구벌에서 밀라노까지'를 주제로 국악관현악과 패션쇼, 가요, 영화음악의 만남을 시도했다.

"대구는 섬유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패션쇼뿐 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리를 더한다면 충분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데뷔 연주회치고는 다소 가벼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없진 않았지만 박씨로서는 이것이 첫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월드컵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5월부터 올 6월까지 8회에 걸친 '월드컵 성공기원 음악회 시리즈'는 대구음악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쿠하치, 고토 등 일본 전통악기와 협연한 '한·일 음악회', 연변예술대 교수를 초청, 북한의 음악을 소개한 '화해의 음악, 겨레의 음악', 대구를 표현하는 시를 주제로 위촉작곡한 작품을 연주한 '2001 소리에 담은 대구', 환경을 주제로 한 '환경음악회', '한·일 재즈 콘서트', 한해 마지막을 장식한 '대구시민음악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표현처럼 그 어느 연주회에서도 같은 '밥상'을 차리지 않았다.

그 결과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대구시민음악회에는 무려 3만명의 관객이 몰렸다."한 마디로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무대, 어떤 연주회를 만드느냐에 따라 국악연주회의 성공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내년 대구에서 열리는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성공 기원음악회 시리즈를 구상했다. 올해 3회를 치렀고 내년에 3회 등 모두 6회에 걸쳐 계속된다. 이 와중에서 박씨는 자신이 1997년 창단한 동국국악예술단과 함께 많은 일들을 해냈다.

대표적인 것이 12월초에 있었던 향가 창작발표회. 가사만 전해오던 향가에 노래를 붙여 현대화하는 작업으로 이 역시 누군가 이미 해야했을 작업이기도 하다.

박씨는 또 다른 2가지 욕심을 부리고 있다. 경상도를 대표하는 국악뮤지컬과 토속민요를 주제로 한 국악관현악 곡을 만들겠다는 것. 국악뮤지컬은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설화에 바탕한 '1000일의 검'(가제)이다.

여기에는 삼국통일뿐 아니라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던 경주,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구의 기상이 함께 담길 예정. 이는 박씨가 전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 시절(1989·10~1995·2) 구상됐던 것으로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때 한국대표로 창작 창극 '심청전'을 공연한 것이 바탕이 됐다.

토속민요를 주제로 한 국악관현악곡 발표회는 사라져가는 우리 것을 보존하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된 것. 수집도 중요하지만 현대 감각에 맞게 재편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헝가리의 코다이는 마자르 민요를 헝가리 음악으로 만들어 세계에 알렸듯이 이제는 우리 음악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하나의 문화 콘텐츠를 구성해 세계로 나가야할 때입니다. 대구·경북의 정체성, 나아가 우리나라의 정체성 찾기 작업을 대구시립국악단이 할 것입니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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