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들은 겉보기엔 비장애인과 별차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의사가 소통되지 않음으로써 불가피하게 사회와 격리돼 버린다. 같은 이유로부모-자식간에도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산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청각장애를 장애 유형들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장애로 규정한다.
◆최현철·손성옥씨 부부의 경우 = 37세 동갑인 대구 동인4가의 최씨 부부는 첫딸 수인(11·가명)이가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랄 때까지만 해도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그러나 작은 아이 영수(7·가명)가 태어난 뒤엔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토록 대물림하기 싫었던 청각장애의 굴레를 영수까지 덮어쓴데다올해 초 특수학교 입학 과정에서 자폐증까지 가진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 부부는 이 엄연한 사실을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청각장애만으로도 자신들의 삶이 이토록 끔찍한데 중복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게 할지 도무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목공소·고물상 등을 돌며 한달에 100만원도 채 못버는 최씨로서는 영수의 치료는 엄두도 못낸다. "언어치료·자폐치료를 받으면 장애가 조금 나아질지 모른다지만 형편이 안된다"는 것. 아무것도 모른 채 장난이나 칠 줄 아는 영수를 볼 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타들어 간다고 했다.
거기다 요즘은 걱정이 더 커졌다. 천신만고 끝에 1천500만원짜리 전세를 겨우 얻었지만 곧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동사무소에서 받던 보조금 40만원도 머잖아 절반으로 깎일 참이다.
최씨 소득이 기초생활 보호 기준을 초과한다는 것. "청각장애라고 남들이 손가락질 해도 열심히바르게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었더니 하늘이 저희에게 더 모진 형벌을 주실 모양입니다". 대책이 없으니 하늘이나 원망해 보는 것 같았다.
◆이기하·임연화씨 부부의 경우 = 대구 대명4동에 사는 이씨(41)와 임씨(34) 부부는 딸 경민이(9)나 아들 동훈이(5)와 얘기할 때 수화를 쓴다. 남매는 건강하지만 부모를 따라 자연스레 수화를 배웠다.
지난 해 경민이가 처음 학교 갔을 때 부모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선생님께 당부 말씀도 드려야 하고 다른 학부모와도 뭔가 얘기를 나눠야 하지만 말을 할 수 없기 때문. 그러나 놀랍게도 경민이는 엄마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지금도 엄마가 학교에 갈 때면 통역을 자청하고 나선다.
이곳 저곳 다니면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주선하고 엄마에게 이것 저것 설명도 해 줄 정도. 경민이가 이렇게 잘하지만 그래도 말 못하는 엄마는 자주 속이 상한다고 했다.
엄마와는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며 남매가 가슴을 탕탕 칠 때는 엄마의 가슴에 피멍이 드는 것. 말이 안 통한다고 소리를 지른 뒤 아이가 할머니에게 달려갈 때는 자신의 장애를 다시 한번 절감한다고 했다.
이 가정도 장애인 가정들이 겪는 빈곤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목재소에서 합판을 다루는 이씨 역시 많이 벌어봤자 한달에 100만원 남짓.남매의 사교육비가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그래서 엄마는 올해 초부터 장애인 직업전문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자수공예를 배워 애들 학원비를 대는 게 꿈.
"아이들은 피아노다 미술이다, 뭐든 하고 싶어하는데 뒤를 못받쳐 주니 답답합니다. 부모가 덮어쓴 신체적 장애는 애들이 벗어났으니 이제 경제적 장애까지도 벗겨주고 싶지만 쉽잖습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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