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노 당선자는 투표일 이틀전인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재창당 수준의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천명한 바 있다. 그는 "당선되면 먼저 민주당부터 개혁하겠다"면서 "김대중 정부의 부패와 실정에 책임있는 세력과 인사들은 응분의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집권세력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노 당선자는 당의 개혁을 지난 90년 '3당합당'으로 뒤섞인 현재의 정치구도를 전면 재편하는 정계개편의 계기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국민경선을 치르면서 이미 87년 갈라진 양김세력의 결합을 통한 정계개편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정치권을 민주화와 개혁세력 대 보수세력간의 대결구도로 새롭게재편하겠다는 구상의 일환이었다.
당장 민주당의 당권이 노 후보 측근세력들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한화갑 대표가 중심이 된 '동교동계'는 급속하게 정치일선에서 후퇴하고 그 자리를 노 당선자의 선거대책위 인사들이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교동으로 대표되는 구세력들이 저항할 경우 파란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한 대표와 한광옥, 박상천, 정균환 최고위원 등은 전면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노 당선자가 DJ정부에서의 부정과 비리척결을 명분으로 일부 세력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도 없지않다.
대신 선대위를 이끌었던 정대철 공동선대위원장과 김원기 고문,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 등이 당의 원로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을 전국정당, 국민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서 호남출신 인사는 뒷전으로 밀리고 영남권과 중부권의참신한 개혁세력들이 정치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 당선자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영입을 시도할 경우 한나라당이 이에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나선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노 당선자가 "취임전에 정치개혁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겠다"는 자신의 공언을 이행하기 위해 시한을 두고 무리하게 정계개편을 추진할 경우 당내분사태를 촉발하면서 한나라당과의 관계도 악화시킬 가능성도 없지않다.
정치권에서는 노 당선자가 유시민씨가 주도하고 김원웅 의원이 대표를 맡고있는 개혁신당과의 통합을 추진, 당의 이념적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면서 이부영, 김부겸, 서상섭 의원 등 한나라당의 개혁성향 의원 영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의 정당이 지역적으로 편중돼있었지만 이 벽을 깨겠다"면서 한나라당 인사들의 영입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 한나라당- 이회창체제 와해 전망
이회창 후보의 대선 패배로 한나라당은 적지않은 내홍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막판까지 우세를 장담했던 당내 분위기를 감안할 경우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당지도부 인책론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근소한 차로 승부가 갈림에 따라 선거전략 수립과 운영과정상의 문제점 등을 둘러싼 책임공방이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선거기간동안 잠복돼왔던 보.혁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 특히 세 대결 차원에서 자민련과 민주당 의원등을 무분별하게 영입한 것을 둘러싸고 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등을 중심으로 반발기류가 적지않게 깔려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표심에서 드러난 정치권의 변화바람과 맞물릴 경우 정계개편이란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은 '분당(分黨)', 나아가 '공중분해'되는 위기상황으로 까지 치닫을 수 있다.
물론 노 당선자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거듭 다짐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새판짜기에 나설 가능성이 낮을 것이란 게 다수의 관측이다.
이와 달리 한나라당이 오히려 내분을 수습하기 위해 원내과반수 의석을 토대로 연초 국회에서부터 대여 공세에 더욱 주력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자민련 및 국민통합 21과의 관계설정 문제도 자연스레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후보의 공백을 대신할 강력한 지도력이 부상하기 쉽지않은 당내의 복잡한 상황을 감안할 경우 이같은 식의 결속도 속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즉 대선패배로 이 후보를 중심으로 한 당내 구심력이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와 맞물리면서 중진 의원들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5월 전당대회를 통해 한나라당은 최고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던 만큼 그동안 물밑에서만 이뤄져왔던 이들간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같다.
일차적으로 내년 5월로 예정된 대표최고위원 선출의 향배에 쏠리게 되며 특히 지역간 세대결 양상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높다. 이때문에 한나라당의 최대 지지기반으로 드러난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의 향배도 주목된다.
특히 당체제 재편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밀려나게 되고 정계개편 움직임까지 가시화될 경우 이들 의원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결국 한나라당에선 이번 선거결과를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란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으며 그 폭도 다른 당에 비해 클 것으로 보인다.
서봉대기자 jinyoo@imaeil.com
◈ 자민련- 충청권 영향력 상실
자민련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19일 밤 곧바로 유운영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노 후보의 당선을 축하했다. 김종필 총재의 '중립'방침에 따라 자민련이 특정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표심을 잃은 충청권 표심이 노 당선자에게 쏠릴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도왔다.
사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노 당선자를 비판하면서 보수노선을 대변해 온 자민련이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대선후를 염두에 둔 JP의 줄타기 행보의 소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날 유 대변인은 "노 후보의 당선은 새로운 정치를 통한 국가발전을 원하는 국민적 선택으로 평가한다"며 노 후보의 당선에 기대감을표시했다. 그러나 자민련은 이번 대선에서 충청권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함에 따라 대선이후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JP의 중립방침에도 불구하고 이인제 권한대행이 공개적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에 나섰지만 충청권 표심은 노 당선자를 선택했다. 민주당을 탈당, 자민련에서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려던 이 대행의 정치력도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반 공개적으로 이 후보 선거운동에 나섰던 정진석, 송광호 의원 등 자민련 의원들의 입지도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 이래저래 대선후 자민련의 진로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 국민통합 21- '최악의 악수' 로 전리품 못 챙겨
투표직전 노 당선자 지지철회로 '최악의 악수(惡手)'를 두는 바람에 국정공동운영이라는 합의도 전리품도 챙기지 못하게 된 국민통합 21과 정몽준 대표의 진로역시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적당한 시점에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으나 독자적으로 후보단일화정신을 파기한 데 대해 이철, 박범진 전의원 등 핵심 당직자들이 탈당한데다 차기에 대한 정 대표의 입지도 사라져 통합 21은 해체될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자민련과 통합 21이 차기 총선에 앞서 합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후보단일화성사 직전, 정 대표가 JP와 합당할 생각을 가졌던 사실과 이 대행과도 만나 대선이후 구도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치적 곤경에 처한 정 대표로서는 자민련과의 합당을 통한 새로운 정치행보를 생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 tk 정치권- 구심점 상실, 위기맞아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대구.경북 정치권에 예측할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5년 동안 '반 DJ 정서'를 대변해오며 지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지난 97년 대선에 이어 또다시 낙선함에 당장 TK 정치권은 정치적 구심점을 상실하게 됐다.
여기에다 지난 30년간 TK정서의 한 축을 형성해왔던 DJ가 사라지고 영남 출신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개막됨에 따라 지역 정서도 상당 부분 변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즉 대선에서 낙선한 이 후보가 대권 재수에 나서 TK 정서를 또다시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맡았던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 직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적 진공 상태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따라서 반 DJ 정서를 등에 없고 지난 6.13 지방선거와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일색으로 채워진 지역 정치권은 심리적 상실감에 따른 위축은 물론 현실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이 후보 당선만이 지역 정치권이 중앙 정치권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며 만약 이 후보가 또다시 낙선한다면 TK는 정치력 영향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며 입을 모아왔다.
실제 대구.경북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김윤환.박철언 전 의원 등 한동안 지역을 대표했던 정치인들이 탈락한 뒤 27개 전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출신 의원들이 당선됐으나 'TK'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대신 허술한 정치적 결속력을 반 DJ정서를 대신한 이 후보의 우산 아래에서 지탱해 왔다.
결국 향후 급변할 정치적 상황 아래에서 자칫 지역 정치권은 방향타를 잃고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즉 민주당의 재창당이나 이 후보 은퇴 이후의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 등 중앙 정치권의 미묘한 변화에도 지역 정치권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정치환경의 변화는 또 1년여 앞으로 다가온 2004년 총선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까지 지역민이 보여왔던 묻지마 방식의 한나라 지지 투표 성향도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어 '세대 교체'나 '인물 교체론'이 대두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즉 지역 표심을 움직이던 반 DJ 정서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나 '정치 개혁'을바라는 목소리가 담겨질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한나라당 위주의 대구.경북 정치권을 향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서적 고리나 중심 인물을 당장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지역 대표 정치인으로 꼽혀왔던 강재섭.박근혜 의원의 향후 행보도 이 후보 낙선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차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TK 리더를 자임해왔던 강 의원의 경우 이 후보의 낙선이라는 상황에서 평소 불협화음을 빚어왔던 한나라당 지역 의원들을 묶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한나라당 탈당과 복당을 오가며 지역적 기반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다.
여기에다 보수적인 지역 정서가 진보적 색채를 지닌 민주당 노 당선자의 노선에 쉽사리 동조 현상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지역 의원들의 성향도 친 노무현쪽으로기울기는 힘들 전망이다. 대구.경북 정치권이 30년 TK정권의 맥이 끊어졌던 지난 92년 대선 이후 또한차례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이재협 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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