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의 승부를 가른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색깔론'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약발이 통하지 않았다. 노무현 당선자의 승리를 결정지은 주요인이기도 하다.
항상 여당의 후보는 야당의 후보를 "사상이 의심스럽다"거나 "좌익이다"라거나 심지어 "빨갱이다"라고 매도했다. 단골 메뉴였다. 이는 매번 선거 결과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미(對美)관계와 대북(對北)관계는 그 중요한 근거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보수 진영의 대표가 야당 후보로 나섰고 진보적인 인물이 여당 후보로 나서 시작부터 달랐다.
김대중 정권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보수진영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앞세워 부패정권 심판론과 함께 노무현 당선자의 사상에 대한 공세를 취했다. 하지만 약발이 예전과는 완연히 달랐다.
5년전 같았으면 도중하차를 시키고도 남았을 노 당선자 장인의 좌익전력은 민주당의 국민경선 과정에서 불거졌으나 대세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이 '백신 효과' 때문인지 본선에서는 더더욱 표심을 자극하지 못했다.
북한핵문제도 일부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신문들이 곧 전쟁이 일어나고 한반도가 전화에 휩싸일 듯이 위기감을 조장했지만 역시 효과는 별로 없었다. 이는 햇볕정책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지난 6월 서해교전 당시 동네 슈퍼 앞에 장사진을 이뤘을 법한 상황인데도 동요가 없었던 데서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둘이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미군 법정이 미군 병사에게 무죄평결을 내림으로써 촉발된 반미감정 확산도 한 몫했다. 일반 시민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오는 등 10만명이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모습은 세상이 변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사건이었다.
한 때 "사진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 "미국에 굽실굽실거리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한미공조를 '금과옥조(金科玉條)' 처럼 여기는 세력들로부터 "위험하다"며 '몰매'를 맞기도 했던 노 당선자가 오히려 국민들에게 신선감을 주는 상황도 연출됐다.
워낙 거센 반미의 물결 때문에 "SOFA(주둔군지위협정) 개정 요구는 반미"라던 이회창 후보마저 SOFA개정과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며 촛불 시위에 참석하는 것을 놓고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오히려 이같은 이 후보의 행동을 보수진영이 나서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사건도 발생했던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역 북풍'이고 '역 미풍'이라고도 한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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