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무현 당선자의 십계명

대선 개표가 끝난뒤 요 며칠동안 대구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왠지 입맛이 없 어졌다'거나 뭔가 땡감을 씹은듯이 떨떠름하고 속이 더부룩한 기분이라는 분들이 많다. 삼성 야구단이 해태팀에게 홈런 맞고 졌을때 느끼는 기분과는 사뭇 다른 감 정이 도시분위기를 침울하게 가라앉히고 있다고도 한다.

서울로 시집간 젊은20대 딸에게 일부러 전화 걸어 '김서방이랑 너랑 꼭 1번 찍어 래이' 다짐 다짐하고 노 후보 어쩌구 하면 '무신 소리하노 거기 찍으면 아(손녀) 봐주는가 봐라'고 엄포도 놓았다는 어느 50대 엄마는 '도대체 95% 지지(광주시)가 뭐냐'고 흥분한다.

우리쪽(대구.경북)은 그래도 18%, 21%씩 노 후보에게 나눠 찍어줬는데 3.6%(광주) 4.6%(전남)가 뭐냐는 섭섭함의 항변이다. 하긴 호남쪽에서 최소한 대구.경북이 찍어준 것과 같은 비율로만 이 후보에게 나눠 찍어줬어도 당락이 갈릴지도 모를일 이긴 하다.

마치 100% 투표율에 100% 득표율을 기록한 북한의 선거(1962년 10월8일 총선)나 1 62만여명의 유권자중 단 한명만 반대해 99.99993%의 득표율을 보였다는 알바니아 공산당선거(1982년) 경우마냥 '똘똘 뭉치기' 선거쯤으로 곡해하는 격한 감정이 배 인 말투들이다.

그러나 제4공화국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인단 2 천539명 전원이 기권 무효도 없이 100% 투표에 100% 득표로 박정희 후보를 뽑았던 기록에서는 뭐라 항변할 것이냐는 것도 생각할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선거는 선거, 어떤 결과든 승복하는 이성적인 사고로 배타적 감성을 접고 함께 내일을 도모하는게 순리다. 한숨속에서도 순리의 여유를 보일줄 아는 것이 경상도 사람의 그릇크기라는 배포나 보여주자는 일부 시민들의 주장이 그런 논리 다. 이왕지사 툭툭 털어버리고 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밀어준 사람을 같이 밀어주자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런분들은 노 후보가 대구를 위한 그럴듯한 큰 공약도 별반 내건게 없지만 씩씩 거리며 고개꼬고 돌아앉아있다고 떡하나 더 얹어 줄리도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요며칠새 대구시민들사이에 퍼져있는 감정과 기분이 대충 그런게 아닌가 싶다. 노 당선자는 그런 대구 민심을 바로 읽었으면 한다.

오늘 아침 '첫눈 같은 정치'를 하겠다는 노 당선자 본인의 신문광고에서 '첫눈이 내리면 답답했던 가슴은 후련해지고 찜찜했던 기분은 깨끗해진다'고 했듯이 정말 첫눈 같은 정치로 답답하고 찜찜해 있는 대구 민심을 잘 헤아려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노 당선자가 임기동안 지켜줬으면 하는 십계명(十戒命)을 권 고드린다.

'공정하고 합리적 인사를 하시라'. 지금 노당선자에게는 첫째 계명도 공정인사, 둘째 계명도 공정인사, 열번째 계명도 오직 공정인사를 통한 화합의 탕 평책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하고서도 편중인사와 부적격 측근 인사로 국정을 그르친 전임 대통령들의 실정을 돌아보면 10가지 계명은 한가지 계명으로 모아 열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국민들은 노 당선자 한명을 대통령으로 뽑았 지만 사실상 앞으로 5년간의 국정은 주변 인물들의 영향을 받으며 펼쳐져 나가게 돼 있다. 아무리 민주국가라 해도 선거 논공행상에는 개국공신의 벼슬나누기 같은 인사 잔치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노 당선자가 차마 버리고 외면 하기 어려운 '그룹'은 한 둘이 아니다. 노사모 후 원 그룹, 민주당내 친노공신들, 선대위 핵심참모들, 인간적이고 사적인 지원그룹 …. 그들이 다 무슨 벼슬자리를 바라거나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출중한 인재를 가 려 썼으면 한다.

조선의 당쟁사가 공신에 대한 편중인사에서 빚어졌음을 주장한 성호(星湖)는 '붕 당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이(利)가 하나고 사람이 둘이면 당파가 둘이 될 것이고 이가 하나고 사람이 넷이면 당파가 넷이 될 것이다.

한 당파에게 권력을 모아줘도 쉽게 사분오열된다 . 왜냐하면 권세를 얻으면 일파를 마구 뽑아 요직에 앉히니 이것이 식당(植黨)이 요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불문하고 중책을 맡기니 은연중 집안안에 내홍이 싹트고 자라는 것이다

'권세를 얻은 당파로서 내홍과 붕당의 폐해를 막으려면 우선 주변인 사들중 행여나 개혁이란 명분아래 개혁정책 입안과정에서 과거의 한을 풀고 싶어 지는 유혹을 느끼는 집단이나 세력이 있다면 냉혹하게 배제할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투표에서는 지지했던 반대했던간에 이제는 당선자를 믿고 개혁은 원하 되 급격한 혼란이나 불안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벌써 정권인수도 되기전에 강경파 친노그룹이 후단협과 동교동계의 옛당 동지들을 밀어내자는 인적청산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반대파는 '당선자 주변에서 설치는 것 같은데 그냥 앉아서 죽지는 않겠다'며 갈기 를 세우고 있다.

청와대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란 보도가 나온다. 성호(星湖)가 갈파한 분열과 내홍( 內訌)이 시작된 듯한 모습이다. 선거때 당선자에 대한 야당의 공격 초점의 하나 가 지나친 과격함과 사회주의적 개혁이 될까 우려하는 '불안'이었다.

당선자의 정치적 앞날에 성패를 가를지도 모를 그런 요소들은 주변그룹 사람들을 동교동계 민주인사말처럼 전투적 성향으로 '설치는' 사람들로 둘거냐 아니면 오늘 아침 광고문안대로 모든 것을 덮고 통합하는 '첫눈같은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 로 구성할 것이냐에 따라 좌우된다.

노 당선자에게 인사문제를 열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가장 우선된 10계명으 로 삼을 것을 권고드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김정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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