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있은 대통령 후보 합동 TV토론회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큰 논쟁거리였다. 특히 용역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기때문. 이런 문제는 IMF사태 후 법을 바꿔 파견 근로를 가능케 허용함으로써 빚어진 것이다.
◇소외된 현장=용역업체나 용역노동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파악조차 불가능했다. 영세 업체가 워낙 많고 구청에 신고만 하면 사업이 가능할 뿐더러 아예 그런 절차조차 안 거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 개폐업도 다반사여서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업계가 추산하는 대구시내 용역업체는 대체로 400~500개. 그 중 280개가 협회에 등록돼 있다고 했다. 이들 업체에 소속돼 일하는 용역노동자는 3만~4만명. '근로자 파견법'은 26개 업종에 파견근로자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업계는 공사장 작업, 건물 경비, 청소, 주차관리, 대형점포 판매원, 텔레마케터 등 단순 업무는 거의 용역 업체에 넘겨져 있다고 했다.
그 중 남녀 비율은 반반 정도라고 했다. 공사 인부, 경비, 주차관리 등은 주로 남자 몫이고, 청소, 판매원 등은 여성이 맡는다는 것. 젊은이들은 임금 적은 용역노동을 기피해 종사자 중 70여%는 50대 이상이라고 했다. 또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사람일수록 힘들어도 임금을 많이 주는 공사장 인부를 선호하며, 임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비.주차관리 등은 퇴직자들이 주로 선택한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용역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은 보통 남성 70, 80만원대, 여성 50만원대인 경우가 많다고 업체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러나 노동자 본인들은 실제 받는 돈이 법정 최저 임금(44시간 근무에 51만4천150원)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대구시내 한 빌딩 청소 용역노동자 손모(65.여.지저동)씨는 주당 56시간을 일하고도 겨우 월 52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도재금(59) 경북대 미화원분회장은 "실수령액 49만9천원에서 교통비 4만~5만원을 빼면 45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대구시내 한 주차장에서 용역노동자로 하루 12시간씩 근무한다는 김모(70.파동)씨는 월급 77만원이 6년째 제자리라고 했다. 김씨는 "용역업체가 난립해 경쟁이 치열한 것도 임금이 떨어진 큰 이유"라고 했다. 과당 경쟁의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 몫이라는 것.
대부분 용역노동자들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잠시 쉬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병원.건물 여성 청소원은 물론이고, 북구의 한 대형할인점 판매원 김모(65.여.칠성동)씨는 "종일 서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24시간씩 2교대 근무한다는 수성구 한 빌딩 경비원 박모(65.수성동)씨는 "19시간 서 있다가 인적이 뜸한 새벽에 5시간 정도 앉을 수 있다"며 "근무 중에는 손님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사용자가 꺼린다"고 했다. 한 용역업체 김모(44) 이사는 "건물주 등 현장 사용자들의 의식이 용역노동자를 자기 직원처럼 보살피려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4대 사회보험이라도=의료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보호장치도 부실하기 그지없다고 현장 노동자들은 지적했다. 상당수 보험은 가입하든 말든 용역노동자들이 선택토록 요구되기 때문.
주차관리 용역노동자 김모(70.파동)씨는 "산재보험은 회사에서 가입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보험은 그것까지 들었다간 가져갈 수 있는 돈이 너무 적을 것 같아 가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빌딩 청소 용역노동자 박모(66.여.침산동)씨는 "보험에 든 동료들의 한달 수입은 48만원에 불과하다"며, 자신은 가입을 않아 그나마 51만원을 챙길 수 있다고 했다.
'불안정 노동 철폐 연대'에 따르면 4대 보험에 가입한 용역업체는 50% 미만이다. 건강보험 가입률만 상대적으로 높을 뿐 국민연금.산재보험.고용보험은 형편 없다는 것. 또 법적 제재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입은 하더라도 실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용역 노동자들은 나중에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노조들의 요구=전국여성노동조합 김영숙(46) 대구지부장은 "법정 최저임금을 더 높여야 이들이 보호될 수 있다"고 했다. 용역업체들이 지금 정도의 임금을 주는 것도 법적인 강제때문이라는 것.
민주노총 대구지부 주상혁(30) 선전부장은 "파견근로제를 즉각 폐지해 용역업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견근로제도가 실제는 임금 착취와 각종 사회보험료 부담 회피를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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