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대선이후...-(2)왜 1번이었나

서울 정치권에서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우리가 권력을 창출했다"거나 "TK가 동의하지 않으면 권력은 넘보지도 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그런 점에서 보면 지난 97년 대선은 대구.경북이 몰표를 주는 후보가 권력을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첫 사례였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은 97년 이후 두번째의 실패인데 왜 5년 전보다 더한 좌절감과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을까. 97년 대선 이후 DJ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 때문인지 몰라도 TK가 다른 곳보다 먼저 등을 돌린 것은 사실이다.

지역에서는 '반 DJ' 기치라면 뭐라도, 누구라도 좋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DJ와 그 후계자에 대한 심판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 '한 번 더 기호 1번'이라며 다시 뭉쳤다. '집단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1번에게 표를 던졌다.

결과는 205만8천610표 대 55만2천103표. 득표율은 74.5% 대 20.0%. 더 똘똘 뭉쳐 5년 전보다 약 10% 득표율을 올렸다. 그러나 다수 지역민의 표심은 국민의 선택과는 달랐다.

상실감을 느끼는 TK 유권자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새 정권이나 지역에 미래가 없다고 속단하고 있는 듯하다. 386세대 다수도 선거전 노무현 정권을 DJ 정권의 연장이라는 시각에서 '2번은 안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구시 달서구에서 섬유업을 하는 유모(39)씨는 "대구사람들이 이회창씨와 노무현씨를 8 대 2로 좋아한 것은 아니다"며 "노 당선자 주변에 DJ와 그 측근들이 포진해 있는 것 아니냐"며 새 당선자의 개혁 의지 관철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더 신랄한 의견도 있다. 수성구에서 식당을 하는 성모(36)씨는 "DJ 이미지가 강한 민주당 인사들에 둘러싸여 잘 될 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 결과를 DJ 정권의 재창출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5년전 선거에서는 DJ 당선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일말의 기대감도 없지 않았던 이 지역에서 이번에는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는 사실은 분명 심각한 현상이다.

심지어 "다음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될 것"이라는 지역감정의 심화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이같은 전망은 주로 한나라당 주변에서 나오지만 1번 지지자들도 크게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의 한나라당으로는 안된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반 DJ라는 하나의 레퍼토리만 우려먹은 한나라당이 5년간 방치했던 자기 혁신을 하지 않을 경우 텃밭에서도 외면받는 홍역을 치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 대구선대본부 김학기 정책실장도 이같은 주장을 하며 "지역 낙후의 원인은 반 YS, 반 DJ에만 매달려 있던 지역 국회의원들의 노력, 역량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지역의 정치적 좌절감과 상실감을 이용, 정치인들이 노 당선자를 상대로 지역정서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실장은 이어 "TK의 정치적 낙담과 좌절이 다른 곳보다 더 큰 것은 30년간 권력을 유지하며 '권력의 산실'이나 되는 것인 양 착각에 빠져 있던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바로 권력 상실감에 따른 '금단현상'이다.

영남대 김태일 교수도 "대구.경북은 80년대 이후 10여년간 지역 출신의 군부에 의한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체성의 혼란 속에 빠졌다"고 비슷한 분석을 했다.

특히 김 교수는 TK 지역 투표행태에 대해 "YS를 왕창 밀었다가, 또 자민련을 밀었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지지 대상을 집단적으로 바꾸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며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과 다르다고 배척하고 백안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도 관용하고 인정하는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호남은 노 후보와 이 후보가 각각 한 번만 방문했다. 그것도 안 갈 수는 없어서 짧게 지나갔다. 노 후보는 안가도 표가 나오는 지역이었고 이 후보는 가도 표가 안 나오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바로 독점의 폐해다. 호남은 노 후보의 독점 지역이었다.

대구.경북은 어땠는가. 호남보다는 덜 해도 각 후보의 유세일정에서 홀대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호남과는 정반대로 이 후보는 안 와도 표가 나오는 곳이고 노 후보는 와도 표가 안 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정파에 의한 독점의 폐해는 결국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이는 독점의 폐해라는 경제논리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TK의 정치적 견해가 바뀔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했다. 바로 3김시대의 종식에서다. 물리적인 DJ의 퇴진은 TK 정치권은 물론 주민들까지 고민하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내 제 1당이자 지역의 '여당'격인 한나라당도 어디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대구시지부 전태흥 홍보부장도 "반 DJ정서에 크게 의존했고 이회창 후보의 구심력이 작용, 하나로 뭉쳐있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라며 "돌파구를 어떻게 찾을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변화 노력과 관련, 김 교수는 "자기쇄신과 세대교체는 필수불가결하다"며 민주당의 전력보강과 환골탈태 필요성을 먼저 주문했다. 김 실장도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김 실장은 "지역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업그레이드가 선행돼야 한다"며 "지금 수준에서는 주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정치권만 변한다고 모두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의 자세에도 변화의 여지는 많다. 때문에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한 쪽이 무조건 좋으면 그 반대편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NO'를 하는 즉흥성이나, 다양성과 개성 그리고 소수도 인정해주는 포용력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이는 비단 정치권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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