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2문화인물-(2)남춘모 화가

20일 오후 청도군 각북면 대산초교. 운동장을 쓸며 귓가를 스치는 스산한 바람, 한구석에 쓰러져있는 농구골대…. 한겨울의 폐교 운동장은 너무 쓸쓸했다.

교사 한쪽에서 점퍼를 껴입은 채 홀로 작업에 열중하는 화가 남춘모(43)씨를 발견했다. 그의 겨울나기는 한가로움과 거리가 먼 듯했다. 재료를 작업실 안팎에 어지럽게 쌓아두고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내년 4월과 6월 서울에서 전시회 일정이 잡혀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몸이 두개라면 좋겠어요".

그는 서울 부산 대구 등의 큰 화랑에서 '모셔가기' 경쟁이 붙을 정도로 각광받는 작가가 됐다. 작년에는 화랑·미술관에서 무려 네차례의 개인전을 했고, 올해에는 한차례 개인전과 시카고·쾰른·멜버른·마이애미 아트페어(미술품 견본시장)에 참가했다. 단기간에 그만큼 성취를 이룬 화가도 드물 것이다.

그의 작업과정을 한참동안 지켜봤다. 폴리에스테르(합성수지)를 틀에 붓고 다듬어 작품을 뽑아내는데 쉽지 않은 공정이었다. 적잖은 노동력도 필요했다. 얼핏 화가라면 그리는 것만 연상시키지만, 그는 만들고 붙이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아래 위로 쭉 뻗은 선(線)맛이 일품이다. 재료는 폴리에스테르지만, 붓질보다 더한 힘이 선에서 느껴진다.

작품의 색감도 더욱 대담해졌다. 화사한 색깔뿐 아니라 물방울, 꽃무늬 같은 경박한(?) 색깔도 보였다.

"6,7년전만 해도 붓으로 그림을 그렸죠. 선맛을 캔버스에 나타내려다 보니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지금처럼 서서히 변해왔죠. 남들은 예전의 표현주의적 작업을 버렸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예전 그의 작업에서 보았던 선맛이 폴리에스테르에 그대로 옮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무척 성실하다. 아침 일찍 작업실에 나와 저녁에 퇴근하고, 바쁠 때는 아예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어제도 작업실에서 잤다고 했다. 그에게서 작가란 예술적 재능 못지않게 성실함이 바탕돼야 하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얼마전 큰 아이가 '아빠가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고 편지에 썼을때 가슴이 찡했어요.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죠".

지난달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마인츠에 작업실을 새로 얻었다. 92년부터 2년여간 독일에서 작업한 경험을 살려 유럽무대에 본격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2004년 독일에서 개인전 일정이 잡혀있다. "내년 서울 전시회를 끝으로 국내 활동을 접고 독일에서 새로운 작업을 할겁니다. 아마 1년중 절반은 청도에, 절반은 독일에 있겠지요…".

내년은 그에게 무척 중요한 한해가 될 것 같다. 현재의 자그마한 성공에 취해있을지, 외국에 활동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을지 갈림길에 서있는 셈이다. 상업성과 예술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도 적잖은 부담거리다. 그에게서 대구화단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면 과연 과장일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