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離合集散'

우리의 정당사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헤쳐 모여'나 '짝짓기'로 빠지는 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누가 수까마귀이고 누가 암까마귀인지 알아보려면 별도의 족보나 조견표가 있어야 할 판이다.

더구나 그 행태가 이념적 균열이나 새로운 가치관 추구에서가 아니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철새들의 이동'이 다반사라 시정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안타까운 건 우리의 정치와 정치인들은 부패·거짓말·몰염치·협잡·궤변·배반·야합 등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민망할 정도로 천태만상의 이합집산의 광경들이 연출됐다. 포장이야 어떻게 됐던 여론 조사로 단일 후보를 만든 이벤트와 그 진행 과정, 투표 전날 밤의 또 다른 이벤트도 마찬가지 범주에 든다.

▲'교수신문'이 송년호(23일자) 특집으로 전국의 교수 120명을 인터넷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이합집산'이 뽑혔다 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철새 정치인'들이 권력과 실세를 좇아 헤어졌다 모이고, 모였다가 헤어지는 행태가 유난히 두드러져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원칙하고 무분별한 세(勢) 불리기의 '덧셈 정치'든, 불안하고 편협한 '뺄셈 정치'든 구태의연한 정치판의 논리를 지식인들이 환영할 리 만무하다.

▲교수들은 그 다음으로 '엉거주춤' '사면초가(四面楚歌)' '전전긍긍(戰戰兢兢)' '암중모색(暗中摸索)' '제행무상(諸行無常)' '등하불명(燈下不明)' 등을 떠올렸지만, 이 표현들 역시 한결같이 밝고 긍정적이기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시각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게다가 해외 분야에서도 세계인의 우려에 아랑곳없이 보수·강경 노선을 고수한 부시 미국 대통령의 고압적 외교를 꼬집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 꼽혀 그런 느낌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원칙과 명분이 없는 이합집산은 결국 철새 정치꾼들의 권력 추구일 뿐, 정치 발전의 시계를 되돌리는 인물 중심의 정당 문화의 결말이지 않은가. 우리 정치도 언제쯤 이념 중심형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는지…. 이런 정치 풍토에서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꼴인 청소년들이 미래의 주인공으로 과연 무얼 더 배울 건지도 두렵다. 차제에 이 같은 철새 정치의 배경에 우리 모두가 함께 서 있다는 사실도 깊이 깨달아야겠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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