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친절해진 화랑

봉산동 화랑가에 가본 시민들이 어느정도 될까.그곳에는 15개 안팎의 화랑이 줄지어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매년 가을에는 '봉산미술제'라는 이름으로 일주일간 축제를 벌이는데도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얼마전 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지인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화랑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얼마인데?" 그는 단 한차례도 미술전시회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솔직히 유럽이나 미국 같으면 과연 그가 현재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곳은 역시 한국이 아닌가.

단순히 그의 무지(?)만 욕할 것은 아니고 문화에 대한 사회의 인식, 우리교육 시스템 등을 문제점으로 꼽을 수밖에…. 솔직히 화랑들이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이유가 제일 크다. 봉산동은 물론 시내 화랑에 처음 가본 사람들의 경험담은 대개 비슷하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화랑관계자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아래 위를 훑어보는 것에 무척 당황하게 됩니다. 인사는 차치하더라도 마치 '수상한 사람' 보듯 하는 시선 때문에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화랑에는 잘모르는 손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잘 없다. 한구석에 화가와 화랑주인이 삐딱하게(?) 앉아 담배 물고 노닥거리고 있다가 그림을 살 사람만 골라 상대하는 게 보통이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나지만, 경직된 화랑분위기에 압도돼 말을 붙이려해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화랑풍경이 대개 이렇다. 단골(컬렉터)과 연고 있는 손님만 상대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IMF이후 컬렉터층이 붕괴되면서 화랑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온 손님에게 인사하고 다과를 접대하는 화랑이 몇곳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얼마전 대구화랑협회는 '대구화랑축제'를 열면서 버스 두대를 마련, 화랑을 무료 순회하는 서비스를 했다. 서비스가 이정도나마 진전됐다는데 조금의 위안을 받지만 전체적으론 아직도 멀었다.

대구 외곽에 위치한 한 화랑은 '손님'을 극진히 모시기로 이름나 있다. 화랑대표가 찾아오는 손님에게 귀찮을(?) 정도로 작품설명을 해주고, 그들에게 전시회마다 팸플릿을 꼭 보내준다. 호기심으로 화랑을 찾았다가 컬렉터로 변신한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성실한 영업방식만이 장소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괜찮은 화랑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임을 확인하게 된다. 친절은 기본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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