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규의 한방 이야기-수승화강

수승화강(水升火降). 액면대로 물이 올라가고 불이 내려간다는 뜻은 아니다. 물과 같은 찬 기운은 올려야 하고 불처럼 뜨거운 기운은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조상들의 건강비결에도 수승화강의 원리가 담겨있다. 이를 우리 몸통에만 적용하면 '가슴은 서늘하게 아랫배는 따뜻하게'라고 말할 수도 있다.

수승화강은 두 가지 상반된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라는 건강 원리이다. 물처럼 찬 기운이 아래로 몰리고 불과 같은 뜨거운 기운이 위로 타오르면 두 가지 기운은 서로 떨어져 버린다.

마치 부부의 이혼과도 같다. 남녀도 다른 성과 만나서 조화를 이뤄 살며, 자연도 하늘과 땅의 두 기운이 조화를 이뤄 만물을 만들어 낸다. 모든 생명 혹은 삶은 서로 다른 두 기운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유지된다.

자연과 인간의 공통된 원리인 것이다. 우리 몸에서도 위쪽은 열이 모이게 되고 아래쪽은 찬 기운이 몰리게 된다. 끼리끼리 같은 기운이 몰리면 결국 병이 생긴다. 따라서 뜨거운 위쪽에는 찬 기운을 보내야 하고 찬 아래쪽에는 뜨거운 기운을 보내야만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부족한 곳에 넉넉함을 주고 서로 다른 기운이 함께 도와 생명과 삶을 살찌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음양의 조화가 중요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한의학에서는 인간의 질병이 단순히 몸에만 국한돼 생긴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관계나 자연환경 등과의 조화를 강조한 것이다. 수승화강의 원리는 자연이나 신체뿐만 아니라 정치나 가정생활에도 적용된다.

정치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도 가족들 마음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 정치인이 자신들의 생각에만 빠지면 국민들의 마음은 점점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는 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타올라 가고 물은 한없이 낮은 곳으로만 흘러 서로 헤어지는 꼴과 같다. 나라와 가정의 수승화강이 제대로 안되면 국민과 가족의 삶이 생기를 잃는다.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불처럼 군림하거나 아내를 물처럼 아래로 무시한다면 물과 불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위에 있을 수록 아래로 낮춰 겸손하고 아래에 있을수록 위를 존경한다면 부부의 수승화강이 제대로 이뤄져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 관계가 유지된다. 덕치를 했던 임금이 기우제를 지낸 것은 단지 비를 내리게 하려는 기원 때문만이 아니다.

기우제에는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려 그들과 함께 의식을 치르려는 임금의 '낮춤'이 깃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수승화강의 덕치를 한다면 국민의 아픈 병을 치유하는 대의(大醫)가 될 것이다.

경산대 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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