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의 눈-질병과 사회

인간의 역사는 기아와 질병과 전쟁의 역사이다. 이 세 가지는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힘을 가진 집단들은 구성원들의 기아 상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의 승패는 예기치 않았던 질병의 유행으로 결판나기도 했다.

예방 접종의 시행은 무서운 유행성 질환들을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유행성 질환들은 치료면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그 옛날엔 아마 지금의 핵폭탄과 같은 위력으로 인류를 위협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 지구 상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인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원을 500만 년 내지 50만 년으로 생각한다면 동물처럼 생존했던 구석기 이전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한 일이다.

교통의 발달과 대량 생산의 계기가 되었던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만 해도 인류는 많이 고달팠을 것이다. 기아, 전쟁, 유행성 질병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처참한 인간들의 주검들이 있었을 것이다.

인류는 문명기에 들어서도 말세가 오리라는 공포 속에서 기아와 질병과 전쟁으로 얼룩졌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인류는 대부분 이제 옛날의 왕족으로 대표되는 특권 계급보다도 훨씬 편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만 생각하더라도 조선조 말과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기아와 질병과 전쟁으로 우리 동포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었다. 역사서들을 보면 전쟁에 대해서는 언급이 많지만 질병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들이 없다.

역사 기술자들이 질병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질병을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이 내리는 재앙 정도로 취급했을 것이다.

내가 내과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의 공부를 했던 1970년대만 해도 생활 용수를 우물 물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위 수인성 전염병들이 창궐했었다. 장티푸스, 이질 등이 그러한 질병들이었다.

장티푸스는 고열이 나서 내과 의원을 찾았고, 장티푸스 합병증으로 장파열이 되어 외과 병원을 환자들이 찾았다. 그러나 요사이는 이러한 수인성 전염병들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요사이는 1970년 대에는 드물게 볼 수 있었던 당뇨병, 고혈압증, 통풍 등의 대사성 질환 혹은 성인병 질환들이 늘어나고 있다.

혈당이 높아서, 혈압이 높아서, 비만증이 생겨서 내과의원을 찾고, 또 눈에 성인병의 합병증이 와서 안과의원을 찾고, 발이 썩어서 외과의원에서 수술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질병들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아가 이땅에서 사라지고 오히려 음식을 과다섭취하고 옛날의 인류들처럼 많이 뛰고 걷지 않아서이다. 수백만 년을, 수십만년을 인류가 그렇게 생활해 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너무 편하게 지냈기 때문에 오는 질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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