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하얀 능선을 탄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도 좋고 앞장서서 길을 만들어도 좋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헤쳐나가는 독특한 맛은 겨울산행이 아니면 느껴볼 수 없는 묘미다. 높은 산 위에서는 이미 겨울축제가 한창이다.
또 한차례 내린 눈으로 마른 가지마다 눈꽃이 맺혔기 때문. 정상부근 봉우리에선 상고대(밤사이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면서 안개와 공기중의 수분이 나뭇가지에 얼어 달라붙는 현상)의 잔치가 반긴다.
서둘러 오르면 눈을 찌를 듯한 기세로 햇빛을 반사해내는 흰옷 입은 나뭇가지들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이때쯤 등산애호가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보관해둔 겨울장비들을 꺼낸다. 그리고 겨울을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 산행지로는 매년 눈꽃축제가 열리는 태백산(1천567m)을 비롯 덕유산(1천614m), 지리산(1천915m), 치악산(1천288m) 등이 꼽힌다. 특히 오대산 자락의 계방산(1천577m)과 대관령의 선자령(1천157m)은 눈과 바람으로 이름난 산이다.
계방산은 적설량이 풍부하다.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지역인 운두령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정상부근에 산죽과 주목의 눈꽃이 장관이다. 선자령은 해발 800m대의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초보자들도 쉽게 겨울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
다만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만큼은 어느 높은 산에도 뒤지지 않는다. 겨울이면 다른 유명 산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을 만큼의 장관을 보여준다.
덕유산과 태백산 정상 부근에 자생하는 주목나무에 핀 설화도 장관이다. 덕유산은 등산객뿐 아니라 사진 동호인들까지 붐비는 곳. 매표소에서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으로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약 9㎞로 왕복 6시간 코스. 9부능선에 오르면 상고대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무주리조트에서 관광곤돌라를 타고 설천봉까지 오르면 20분 산행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겨울산행의 진정한 묘미는 생략한 채 눈꽃구경만 하려는 이들이 애용한다.
태백산은 겨울산행의 명소. 이때쯤 내린 눈은 녹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이듬해 3월까지 눈세상을 이룬다. 정상 천제단 주변 주목군락에 핀 눈꽃은 너무 잘 알려진 풍경이다. 하지만 그 이전의 상고대가 빚어내는 분위기도 만만찮다.
상고대는 바람 부는 방향을 따라 산호초처럼 키워나가 환상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태백산 겨울산행의 또 다른 맛은 하산길의 오궁썰매(오리궁둥이 썰매). 비료포대 하나면 웬만한 눈썰매장보다 더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유일사매표소~장군봉~망경사~당골 코스가 일반적이다.
고사목으로 가득한 지리산 제석봉도 빼놓을 수 없는 겨울산행지다. 제석봉의 겨울풍경은 산악회 사무실마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겨울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겨울등반의 꽃이라는 빙벽등반을 위해선 칠선계곡을 찾을 만하다.
빙벽등반 등 겨울등반 기술을 익히려면 좀 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좋다. 대구등산학교(053-351-3803)에서 기초등산교육을 이수한 40세 미만의 산악동호인을 대상으로 제18기 동계반 학생 2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2003년 1월3일~26일까지 이론과 빙벽등반 등 실기를 배울 수 있다. 접수마감은 1월3일.
◇주의할 점=등산전문가들은 겨울산행이야말로 등산의 맛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매력만큼이나 위험도 크기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잊지말아야 할 일.
초보자들은 경험자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혼자 산행은 금물. 3명 이상 같이 가야 안전하다.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겉옷도 필수다. 약간의 투자를 하더라도 바람을 막고 비나 눈에 젖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수·투습기능이 있는 재킷을 준비하는 게 좋다.
젖은 땀에 체온을 뺏길 수 있으므로 습기를 함유하지 않은 따듯한 옷도 따로 준비한다. 겨울은 일몰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과욕은 금물. 겸손해야 한다. 오후 4시 이전에 하산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운다. 대피소 등 산행 당시의 정보를 사전에 산악회 등을 통해 파악해두면 큰 도움이 된다.
겨울 산의 고지는 항상 눈이 쌓여있다. 아이젠은 필수품목. 초보자는 네발짜리면 무난하다. 양말과 장갑은 보온이 잘되는 순모제품으로 여벌을 준비해야 한다. 초컬릿이나 사탕, 과일 등 칼로리가 높은 비상식량도 꼭 챙겨야 할 것 중 하나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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