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설경비'문제 뭔가

'귀가 때 현관문 지문감지기에 손가락을 갖다대고 동공인식기에 눈을 맞춰 집주인임이 확인되면 비상벨이 울리지 않고 문이 열린다. 외출 때는 경호원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에스코트 한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실생활에까지 쓰일 날이 머잖았다. 이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기때문.

◇어떤 업체들이 활동하나?=1977년 한 대기업 총수가 일본에 갔다가 노란 경광등을 번쩍이며 쏜살같이 달려가는 차를 보고 의아해했다. 당시만 해도 경찰차가 아니고는 경광등을 사용하는 승용차가 국내에는 없었던 것. 사설경비업체 요원들의 긴급자동차라는 설명을 나중에 들은 이 사업가는 곧바로 국내에 무인경비 회사를 차렸다. 국내 1호 사설경비업체로 1999년 '대도' 조세형씨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화제가 됐던 ㅇ사가 탄생한 것.

사설 경비업체들도 전공하는 업무에 따라 차이가 있다. 기계경비, 호송경비, 신변보호, 시설경비 등이 그것. 호송경비는 은행 등의 현금.귀금속.귀중상품 운반 때 호송하는 것이고, 신변보호는 유명인사를 경호하는 것으로 최근 여러 대학에서 경호학과를 신설할 정도로 수요가 늘었다. 시설경비는 일종의 인력파송업. 빌딩.아파트 등의 도난.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경비원을 파견하는 것이다.

사설 경비업체는 1977년 '경비업법' 제정 이후 생기기 시작했으나 그 후 10여년 동안에도 크게 번창하지 못했다. 그러다 1986년 아시안게임 뒤 상황이 달라진 것. 대구 경우 1986년 첫 사설 경비업체가 생겼으며 현재 등록된 숫자는 호송경비 4개, 신변보호 9개, 기계경비 11개, 시설경비 129개 등 총 153개. 거기다 본사가 다른 지역에 있는 업체의 지사까지 합하면 200개 이상의 업체가 대구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경비협회 대구지회 주창우 사무국장은 "강력범죄가 활개치면서 경찰력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깊어짐으로써 사설경비업체 숫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설경비 가입 확산=사설경비 중에서도 일반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기계경비'이다. 은행.가게 등에 감지장비를 설치해 두고 외부 침입자가 있을 경우 경비요원이 현장으로 출동케 하는 무인경비시스템이 그것.

대구시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업체들이 이 시스템을 설치하기 시작, 현재는 가입자가 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어지간한 가게들은 거의가 가입했고, 이제는 규모 큰 주택들도 가입을 당연시할 정도에 이르렀다.

대구시내 ㅇ기계경비업체 경우 직원이 300명에 달하고 순찰차도 20대에 이른다. 시가지를 20개 구역으로 나눠 각 1명씩의 경비원이 8시간씩 3교대로 24시간 순찰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현재 가입자가 1만3천명을 넘었다"며 "최근에는 업체보다 개인사업자.가정 가입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시설은 무료로 해 주는 업체도 있고 수십만원까지 자부담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요금도 월 5만원에서 20만원까지 각양각색.

◇갖가지 갈등=이렇게 무인경비 시스템이 생활 속으로 넓게 퍼진 후 가입자와 업체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적잖다. 심지어 손해배상을 둘러싸고 소송까지 이어질 정도.

ㅋ사에 가입한 대구 지산동 ㄴ보석점은 지난 7월 초 도둑에게 8천여만원 어치를 털렸지만 보상을 한푼도 못받고 있다고 했다. "가입자가 경비업체 감지기가 부착된 금고에 보관 하지 않아 발생한 피해는 경비업체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배상한다"는 특별약관 규정에 해당한다며 업체측이 법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때문.

ㄴ보석점 업주는 "사고발생 사전 차단, 사후보상 업계 최고수준 등 홍보 문구를 내세워 가입자 확보에 나서놓고도 사고가 발생하면 이런저런 약관을 내세워 보상은 회피한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예 보험에도 가입 않은 영세업체들까지 난립해 가입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관련 법규 강화를 주장했다. 한 경비업체 관계자는 "일년 동안의 피해 보상액이 정해져 있어 이를 초과하면 더 이상 보상할 수 없는 영세업체들이 많다"고 전했고, 한국경비협회 자문위원 박병식 교수(용인대)는 "경비업체 허가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 부적격 영세업체들이 늘면서 질적 저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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