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29일 제네바기본합의문이 사실상 파기됨으로써 핵무기비확산조약(NPT)상 북한의 '특수 지위'마저 위태롭게 됐다고 지적한 것은 'NPT 탈퇴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지난 12일 핵 동결 해제 및 핵 시설 재가동을 선언한 이후 며칠 간격으로 계속되고 있는 대미 압박 공세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어느날 갑자기 초강경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핵 시설 재가동을 선언하면서 12일과 14일 두 차례 엘 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게 감시 카메라 및 봉인 제거를 요청한 뒤 21일 5㎿ 원자로 봉인을 제거했고 곧이어 폐연료봉 저장시설 봉인(22일)과 영변 방사화학실험실봉인(23·24일)을 잇달아 제거했으며 지난 27일 IAEA 사찰단원 추방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한 미국 등 전 서방 세계가 북한의 위험한 '핵 외교'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일방적으로 미국의 편을 드는 양상이 나타나자 최고 수위의 대응책이라고 여겨졌던 'NPT 탈퇴' 카드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있다.
실제로 독일 정부가 북한 대사를 불러 한반도 핵 위기 고조에 대해 '경고'하고 호주가 대사 파견을 미루는 등 사실상 서방 진영 전체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북한은 1993년 1차 핵 위기 당시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었다.
또 이날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소위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라는 새로운 대북 포위 압박 전술을 시사했고 미국의 CNN을 위시한 서방언론들이 이를 톱뉴스로 타전하면서 위기감을 조성하자 이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993년초 클린턴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전례 없는 북한 핵 '특별 사찰'을 결의(2.25)하는 등 전방위 압박 공세가 시작되자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3.8) 나흘만에 NPT 탈퇴를 선언했었다.
당시와 달리 지금은 미국이 거듭 '불가침' 의사를 밝히고는 있지만 '대화 불가'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당시와 유사한 고강도 압박 전술을 구사하려 하자 북한은 마침내 '초강수'를 내비친 것이다.
다만 이날 외무성대변인 담화는 'NPT 탈퇴 선언'과는 거리가 있으며 이런 단계에 이르기 전에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NPT 상의 특수지위가 위태롭다는 것은 NPT를 탈퇴한다거나 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외교적 수사'를 통해 초강경 대응을 예시하면서 미국에 대해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을 촉구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외국어대 이장희 교수는 "이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으며 정면대결을 피하고자 하는 북한 나름대로의 신중한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 이번 핵 파문의 진상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고 풀이했다.
국제사회가 공정한 입장에서 미국의 강경한 태도를 완화시켜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담화에서 "만일 다른 나라들이 조선(한)반도 핵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다면 미국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안전 담보를 주고 대화에 나서도록 요구해야 한다"거나 "미국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입장에서 미국으로 하여금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고 우리와의 대화에 나오도록 응당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미국이 계속 북-미 불가침조약에 응하지 않으면서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공조를 앞세워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일 경우 북한은 초강수인 'NPT 탈퇴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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