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가정파탄

올 한해를 통틀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뉴스가 있었다면 그것은 가정과 가계의 파탄이다. 가구 당 평균부채 3천만원에, 결혼 10쌍 중 4쌍 이혼이란 21세기 벽두 우리 사회의 불안한 지표다. 가계파탄의 파괴력은 수년, 가정파탄의 파괴력은 수십 년 뒤에 구체화될 것이다. 가계파탄은 어느 정도 회복가능한 일이라 밀쳐둘 수도 있다. 그러나 가정파탄은 근본치유가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이런 위험 앞에 우리는 너무 둔감하다. 그것이 의미하는 사회붕괴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80년대 중반 선진국 덴마크의 모습이다. 두 집 중 한 집의 부부가 이혼 경력자였다. 남편이 이혼했거나 아내가 이혼했거나 둘 다 이혼했거나. 여성들의 80% 이상이 전업직장인이나 시간제 직장인으로 일했다. 높은 세 부담으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계유지가 안됐다. 당시의 우리 기준으로는 경이적인 사회현상이었다. 이혼은 숨어서 하던 시대고, 여성취업은 '홍일점'이 들먹여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도 채 안 돼 우리사회에 가정파괴가 일어났다. 몇 십 년 뒤엔 두 집 건너 한 집이 이혼남이거나 이혼녀가 될 판이다.

▲가정은 우리 사회의 세포다. 이 하나 하나의 세포가 건전할 때 사회의 건강이 지켜진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라날 자녀들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됐다. 일반화의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이 가정들이 사회적 암세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곧 우리사회의 정신적 불건전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덴마크는 자신들의 전통에 입각한 사회복지로 이 문제를 풀려 했다. 그러나 복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부모이상의 자녀복지와 자녀이상의 부모복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복지도 자식이나 부모를 대신하여 인간성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평생에 두 번 주례를 섰다. 그 주례 말씀 중"아내는 어머니로서 첫 3년 동안 자식을 꼭 지키라"고 한 대목이 있다. "3년 간 자식과 붙어 있을 형편이 못 되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도 했다. 자식을 바로 성장시키려면 양육기에 따뜻한 인간성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지론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 말씀이 지켜질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가계의 파탄으로 아내나 어머니들이 맞벌이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여기에 성 문란 풍조가 겹쳐 가정파괴가 더 심화되고 있다. 평등고용, 여권신장도 이점에서는 장애물이다. 3년 간 직장을 비우거나, 양육만 전담하기가 쉽지 않다. 평등의 개념을 '마음 맞지 않으면 이혼'으로 등식화하는 풍조도 우리를 위태롭게 한다. 자기희생을 잊어버린 사회, 미래세대에 빚을 지고 있는 세대, 그것이 송년의 우리 모습 아닐까.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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