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지역의 스타작가 셋

한해가 또다시 저문다. 올 한해 동안 대구미술계는 무얼 했을까. 한 화가가 망년회 자리에서 던진 화두. "예전 것만 파먹고 살아왔는데 내년에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대구미술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를 압축한 얘기가 아닌가.

아직도 대구미술계는 구상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상이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강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한창 활동하는 30, 40대 작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아마추어들의 전시회를 가봐도 비슷비슷한 그림 일색이다. 전부 어디서 본듯한 그림이다. 풍경화는 장이규 이원희의 작품과 비슷하고, 정물화는 김일해의 작품과 비슷하다. 바구니에 담긴 탐스런 장미꽃, 황토빛깔의 농촌풍경, 음영이 뚜렷한 짙푸른 산….

이원희(계명대 서양화과 교수)씨의 평소 지론은 명확하다. "꼭 누구 그림을 닮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상작품에 매달리면 화가로 생활하면서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된다는 겁니다. 아직도 팔리기 때문이죠".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공자 말씀은 여기에 끼여들 여지가 없다. 누구에게나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이 논리를 거품물고 반대하는 이들도 엄청 많지만, 새삼 언급하지는 않겠다.

김일해 장이규 이원희 세사람은 대구미술계의 '스타'다. 그림 하나로 부와 명성을 어느정도 거머쥐는 것을 지켜본 동료·후배들이 자연스레 본받고 배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근데 여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80년대 후반 그들 3명은 30대 중반 나이에 불과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었고 지금까지 그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한 화랑주인은 "솔직히 그들 만큼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어디 있는가.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과연 그만큼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후학들은 그들의 겉모습만 배울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성과 열정을 본받는 것이 어떤가. 그것은 구상이고 비구상이고 상관없다. '예술은 언제나 전위적'이라는 얘기가 있듯, 새로움이 없으면 자그마한 발전도 담보할 수 없다. 내년에는 자신만의 개성과 실력으로 무장한 화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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