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휘트먼과 록펠러

다시 한해의 막이 내려지는 지금, 나는 손바닥만한 책 한 권을 들고 있다. 바랠 대로 바래 누렇다 못해 꺼멓게 변해 가는 종이에 깨알같은납활자 글씨가 박힌 책 . 이 문고판은 1977년 백범사상연구소가 시리즈로 펴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 미국의 두 양심적 지식인이 고발한 19세기 후반의 미국 노동운동 비사(秘史)이다.

내 몸과 정신에 또 한 살을 더 얹기 앞서 오랜만에 다시 꺼낸 책인데, 나의 숨을 멈추게 하는 고통스런 대목과 만나게 되었다.더 젊었던 날에는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남북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1863년, 커다란 병원처럼 변한 워싱턴에서 시인 윌트 휘트먼은 종군기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한편 부상당한 북군 병사들과 고통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들을 돌보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닌 나머지 42세밖에 되지 않은 머리와 수염이 온통 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에 300달러로 가난뱅이 청년을 구입해 징집의무를 대행시킨 20대 초반의 앤드류 카네기, 죤 록펠러, J.P.모건,필립 아서 등은 전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전쟁 중에 오히려 절정을 구가하는 경제혁명 속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산더미처럼 끌어 모았고, 마침내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재벌이 되어 돈을 지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노예해방의 남북전쟁, 그 제2의 미국혁명은 그들을 위해서 일어난 것 같았다.멈추었던 숨을 들이쉬며 나는 스스로 묻고 있었다.

똑같은 하나의 현장에서 보여준 진정한 문학인과 사업가의 삶의 양식이 그토록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거늘, 그래도 아이들에게 휘트먼의 영혼을 본받아야 한다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돈 세상'에서. 거듭 숨이 막히는 중에 문득 이번 대선에 출마하여 형편없이 낙방한 사회당 후보의 벽보에서 보았던 슬로건이 떠오른다. '돈세상을 뒤엎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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