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에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책 읽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는 인재 양성 기관인 '독서당(讀書堂)'이 있었다.
1492년 서울 마포에 개설된 '남호(南湖)독서당'과 1517년에 문을 연 서울 옥수동의 '동호(東湖)독서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책을 읽도록 휴가를 주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만든 세종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임금들의 지원도 대단했다.
대제학은 독서당 출신으로 뽑도록 제도화하기까지 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우리 민족은 예부터 독서를 중시했다.
지난날 취미난에 '독서'라고 쓴 사람들도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한 나라의 책 읽는 인구를 뜻하는 독서율이 일본은 지난해 87%였으나 우리나라는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 달 동안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도 53.2%나 됐다.
요즘 신문과 방송이 북 섹션을 늘리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책 읽기를 부추기고 있으나 TV와 컴퓨터 때문에 여전히 밀리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활자 매체가 주던 재미가 인터넷과 모바일로 넘어갔다는 이 시대에도 '책벌레'는 적지 않다 한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교보 북클럽 회원 분석'에 따르면, 전체 회원 182만명 중 지난해 1월부터 10개월 동안 300만원 어치 이상의 책을 산 순수 개인장서가가 145명이다.
이들 중 남성이 75%, 서울 거주자가 57%를 차지한다.
직업별로는 교직자가 25.7%, 대학.대학원생이 16.8%로 높지만, 자영업자.공무원.정보기술(IT)산업 종사자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지거나 학자들은 책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회사원은 한 해에 1천만원 어치의 책을 사고, 어떤 고급공무원은 매일 한 권은 꼭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계 인사들로는 김정태 국민은행장, 손길승 SK 회장, 김재철 무역협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 김홍기 삼성SDS 사장 등이 매일 한 권 이상을 읽는다 한다.
관료 출신 이상희 전 내무장관.대구시장, 남재희 전 노동장관, 영화배우 안성기 장미희씨도 책벌레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은 전지 훈련 때도 가방에 책을 가득 넣고 다니며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한다.
인터뷰 때마다 시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던 기억도 생생하다.
독서의 힘은 한 개인의 역량을 고양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속된 조직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그 조직과 결속돼 국가의 힘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린다.
독서력이 한 나라의 역량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책벌레들이 더욱 돋보이는 세상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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