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홀몸노인 도시락 배달 봉사원 옥정희씨

*"사랑을 주었더니 건강이 찾아왔죠"

대구 검단.산격.복현.대현동에는 매주 화.토요일마다 다마스 승합차 한대가 나타난다.

옥점희(51.여.산격동)씨가 따뜻한 도시락 20개를 싣고 힘든 노인들을 찾아 동네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는 것. 옥씨는 대구 가정복지관의 '홀몸노인 도시락 배달' 자원봉사자이다.

2001년 4월 이 일을 시작할 때 옥씨는 지팡이를 짚어야 다닐 수 있었다.

그 한달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내내 병원 신세를 졌던 때문. 여전히 몸의 반이 말을 듣지 않아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었지만 퇴원하자마자 지팡이를 숨기고 바로 집 근처 가정복지관을 찾아 "봉사원으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산재를 입은 후 살림이 어려워져 일에만 매달려 살았습니다.

낮엔 리어카에서 풀빵을 팔고 저녁엔 통닭가게를 했습니다.

그러다 과로했던 모양입니다.

쓰러지기 바로 몇달 전 '돈을 3년만 더 번 뒤 남을 위해 좋은 일 하자'고 다짐했었는데 그 3년을 못채우고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몸의 나머지 절반에까지 신경마비가 오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봉사라는 걸 해보자고 나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도시락 배달은 반신불수의 옥씨에겐 무거운 일이었다.

운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 손에 도시락,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언덕배기.골목 끝에 사는 홀몸 노인을 찾아 움직이는 일은 보통 아니었다.

넘어지기를 밥먹듯 하다보니 홀몸노인들 앞에 도달할 즈음 언제나 그의 얼굴은 상처로 지저분했다.

도시락 배달은 오전 내 끝내도록 돼 있었지만 옥씨는 오전 몇 시간 안에 배달을 끝낸 경우가 거의 없다.

치매노인 집에 가면 청소를 해 줘야 했고, 온종일 누워 지내는 중증 환자에게는 말벗이 돼 줘야 했기때문. "제 도시락을 받는 노인 중에 올해 91세 되는 강우야모 할머니라는 분이 계십니다.

5남매 자식을 모두 먼저 떠나보내고 치매에다 매일 술만 드시던 분이었지요. 하지만 제가 청소를 해 드리고 식사 제때 하라고 잔소리를 한 이후로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제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강우야모 할머니만 좋아진 것이 아니었다.

정작 건강을 되찾은 사람은 옥씨 자신이었다.

지난달 말에는 드디어 지팡이를 내던졌다.

마비됐던 반신의 신경이 대부분 정상으로 되돌아왔기 때문. 옥씨는 그래서 "봉사가 내 인생을 바꿔놨다"고 했다.

게다가 작년에 딸은 고교 교사로, 아들은 회사원으로 취직해 이제 가정 살림도 펴졌다.

자녀들도 틈만 나면 "엄마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작년에 제 도시락을 받던 할머니 한 분이 울면서 양로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가기 싫다는 노인이 양로원으로 들어가는 걸 저는 그냥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붙잡고 우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20명의 노인들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끝까지 섬기려 작정하고 있습니다". 옥씨는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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