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통신은 대도시의 혈류(血流) 같은 것이지만 대구에는 교통을 챙기는 주인이 없다. 이때문에 도로 곳곳이 구조적으로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도록 돼 있는데도 통행 방법을 조정하려는 노력이 없고, 골목길들이 교행하는 차들로 막혀도 누구하나 일방통행화 시킬 엄두 내는 주체가 없다.
이런 문제를 다룰 기구로 경찰은 '교통규제심의위원회'를 설치, 신호등.횡단보도 등 설치에서부터 일방통행 지정, 좌회전 허용 등 통행 관련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능동적이고 포괄적으로 시가지 교통 체계를 관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않은 채 민원들만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데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구군청과 경찰에 접수된 관련 민원 중 30여건씩을 골라 매월 한번 회의를 통해 처리하는 것조차 "현지 주민 반응을 가장 우선시해 반발이 있으면 필수불가결한 조치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 경찰관은 말했다. 주인의식이 없고 수동적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런 과제를 경찰 몫으로만 돌린 채 상관도 않고 있는 대구시는 자신들 몫인 교통종합대책조차 만들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다. 시는 문희갑 전 시장 당시 교통 대개편 정책을 수립한 적 있으나 IMF사태 이후 무력화된 후 손을 놓고 있다. 조해녕 시장 취임 이후인 작년 11월 다시 시도됐던 중장기 개선대책 제시 역시 실천 가능성과 시민 설득에 의문이 제기돼 보류됐다.
지하철 2호선 개통이 가까와지고 있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방통행 운영 확대, 시내버스 노선조정 등 시가지 통행방법 전면 개편 검토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심지어 엄연히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한 대형할인점 등의 주변 교통 흐름이 막히는 일이 반복돼도 제도적 보완책마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차단속이 사실상 방기되다시피 해 골목길들이 이미 막혔고 간선도로들조차 침범받고 있지만 대구시는 구군청 업무라며 아무 대응도 않고 있다.
이런 사실상의 교통 무대책 상황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경찰.구군청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교통행정권을 시청으로 일원화 집중화해 별도의 책임 있는 전담 기구를 설치 운영하는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주차단속권의 회수 및 시 집중 행사, 지방경찰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 교통 혼란 실태
대구 교통이 아무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 이로인해 도심 곳곳은 엉망이 돼 무질서가 지배, 시민들이 조급증에 시달려야 하는 또다른 정신적 피해까지 입고 있다.
◇엉망된 도심 = 퇴근시간대 영남대병원 네거리는 일대는 엉망이 된다. 병원에서 나오는 차들이 대로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무질서가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 특히 영남대병원에서 나오는 상당수 차들은 불과 몇m밖에 안되는 거리를 달리며 3개 차로나 뛰어넘어 좌회전 및 U턴 하려 시도하는 바람에 직진차들과 뒤엉기고 있다.
인근에서 상점을 하는 이영민(35)씨는 "차량이 엉기는 일이 일상사가 되다 보니 접촉사고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든호텔 남쪽의 봉덕네거리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관제탑길에서 나오는 차들이 중동교 쪽으로 좌회전하려고 3m도 안되는 구간에서 2개 차로를 넘어들면서 혼란이 일어나는 것. 그러나 직진 차들은 좌회전 차를 끼워주지 않으려 경음기를 울리며 밀어붙이기를 해 차들이 뒤엉기고 있는 것.
이들 지점들의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좌회전 차로 진입이 불가능한 구간인데도 당국이 이를 금지하지 않아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로교통법 규정을 적용할 경우 영남대병원에서 나오는 차나 관제탑길에서 진출하는 차에 대해서는 좌회전을 금지시켜야 하고, 혼란을 더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이들 도로는 역방향으로 일방통행시켜야 한다는 것.
◇방치되는 교통 문제 = 대로들만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소방도로라 불리는 골목길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안그래도 양방통행이 쉽잖은 것이 골목길인데 불법주차까지 일상화되니 통행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골목길 주차는 단속 대상으로조차 삼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더 절실해지는 일방통행 지정조차 엄두내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의 대도시들은 골목길들을 대부분 일방통행화 함으로써 교행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은 물론 불법주차를 철저히 단속해 골목길 주택들도 아예 1층은 주차장으로 꾸미고 있을 정도이다.
교통 무법천지 상황은 이미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도달(본지 12월16∼18일자 보도)했지만, 대구에는 이런 문제를 능동적으로 검토하고 개선을 추진하는 행정기구가 사실상 없다. 대구의 교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보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희갑 전 시장은 취임 직후 이 문제에 상당한 열정을 쏟아 '교통개선 기획단'을 구성,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을 추진했다.
21세기형 교통체계 구축이 당시 기획단의 목표. 수립된 정책에는 획기적인 것이 많았고 그 대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추구돼야 할 방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정책들은 대부분 사문화되고 말았다.
◇도심 진입 억제책의 좌절 = 문 전 시장 초기 대구시는 차들이 아예 진입하기를 꺼리도록 함으로써 도심 통행 문제를 해결키로 했었다. 두드러진 방법은 3개.
하나는 승용차 중심의 교통을 지하철.버스.택시 중심으로 바꾸기로 하고 1차순환선 안을 '대중교통 특구'로 지정, 승용차의 도심 진입을 어렵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도심 진입 승용차에는 통행세를 물리는 방안이 강구됐고, 대신 도심 밖 일정한 곳에는 승용차를 세워둘 수 있도록 주차시설을 대폭 확충키로 했다.
또 도심에는 순환버스나 신교통수단을 도입에 이용토록 한다는 것. 이 제도가 일부 시도된 것은 중앙로였다. 당시 진행 중이던 지하철 1호선 공사도 고려해 중앙로에는 버스.택시만 다닐 수 있도록 규제했던 것. 그러나 지하철 개통 후 상인들 반발로 중앙로 규제조차 포기됐고, 전체 구상은 통행세를 물릴 묘안이 없다는 등 이유로 포기됐다.
두번째는 도심 건물들이 주차장을 가능한 한 적게 만들도록 억제하는 '주차 상한제'를 실시하는 것. 흔히 주차장을 늘려야 주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완전히 거스르는 서구형 발상이다. 현재는 밀리오레로 변한 당시의 대우빌딩 건설 계획에서부터 이 정책의 적용이 시도됐었다.
그러나 그 후 이 정책이 폐기됨으로써 도심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설 주차장들까지 들어서 결국엔 차의 도심 유입을 촉진시키고 말았다.
세번째는 도심의 사설 주차장 주차료를 의무적으로 대폭 올리자는 것이었다. 도심에 차를 몰고 들어 가면 무거운 주차비를 내야 해 손해 본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시도. 그러나 이 방안도 도심 상권을 위축시킨다는 반발에 밀려났다.
◇간선도로 일방화 실패 = 달구로(봉산육거리~시청~칠성시장) 동덕로(동인네거리~삼덕네거리)를 1996년 말부터 일방통행시키기로 했었다. 성과가 좋을 경우 계산오거리~태평네거리, 신남네거리~서문시장~달성네거리 등도 일방통행화 한다는 것. 그러나 이 계획은 논의단계에서 사라졌다.
양방향 통행에 익숙해진 시민들의 불편 주장, 상권 약화를 우려한 관련 상인.주민의 반대, 일방통행이 끝나는 부분에서 교통량 처리 해법이 없다는 한계, 교통체증을 우려한 경찰의 반대 등의 문제에 부닥친 것.
하지만 도쿄 등 일본 대도시들은 골목길은 물론 도심 대로까지도 일방화해 정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비전 대신 민원 회피를 선택함으로써 실현을 포기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 대구 교통 정책을 책임지고 통합 기획.집행할 수 있는 기구의 신설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영남대 김대웅 교수는 "신호조정 업무 외의 모든 교통행정은 경찰에서 시청으로 이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시는 도로를 만들고 경찰은 통행방법을 관리하는 이원적 구조 아래서는 책임있는 교통행정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
조해녕 대구시장은 "시장이 지휘할 수 있는 지방경찰제 도입이 이런 문제때문에 필요하다"며 "시도지사 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국립인 현재의 경찰은 기존 체제 유지에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지역의 역동적인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며 현 체제가 적절치 못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차단속권은 선거에서의 표를 의식해 임무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는 구청장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시에서 회수.집중화해 집행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이미 제시(본지 2002년 12월27일자 보도)돼 있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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