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새 정부의 신일(愼日)

태양과 지구의 평균거리는 1억 4,960만㎞다.

양력 정월 초하루는 지구가 태양의 근점(近點)을 지나는 달의 첫날이다.

이때 지구와 태양은 평균보다 250만㎞ 가까워지고, 원점을 지나는 7월 초에는 250만㎞ 멀어진다.

음력에서는 태양의 힘이 왕성해지는(낮이 길어지는) 동지(冬至)를 1년의 출발점으로 한다.

11월을 자월(子月), 12월을 축월(丑月), 1월을 인월(寅月) 순으로 부르는 것도 동지를 한 해의 머리로 보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유래도 여기서 비롯된다.

동지는 조선조의 4대 명절인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에 더하여 5명절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의 설 명절은 '작은 설'인 동지에서부터 설날, 대보름까지로 이어졌다.

설날은 달이 극도로 이지러진 상태에서 다시 커 가는 출발점에 있는 날이다.

이는 사람의 삶이나 정신적 상황이 중지되는 전이기(轉移期)로 여겨진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삼가 조심하는 풍속을 가졌다.

설날을 신일 (愼日)이라고 별칭하는 이유다.

이때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기를 빈다.

또 '상진일'(첫 용날), 상오일(첫 말날), '상자일'(첫 쥐날), '상해일'(첫 돼지날)도 모두 설날, 곧 '조심하는 날'로 여겼다.

'설다, 낯설다'의 어원에서도 조상들의 '삼가는' 자세가 짚어진다.

'설다, 낯설다'란 말의 어원은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설은 새해라는 정신.문화적 충격에서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정착되었다는 이야기다.

▲지난 4대의 대통령 선거가 12월 16일, 18일, 18일, 19일 치러졌다.

우연이지만 대선이 12월에 실시된 것은 우리 전통과 잘 맞아 떨어진다.

묵은해를 마무리하는 동지(보통 12월 23일)에 바로 앞서 새 대통령을 뽑고, 설날을 조금 지나 새 정권을 출범시키니 말이다.

한가지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역대 정권들이 '삼가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천하의 대권을 잡은 이들이 모름지기 큰 바보(大愚)처럼 겸손해야 할 터인데 경박한 처신을 하는 예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의 운명이 갈팡질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당선자도 그동안 '과격한' 이미지를 많이 걷어냈지만 아직도 '불안감'을 완전히 가셔내지는 못했다.

'법치(法治)'를 정권의 대통(大統)으로 삼아야 할 터에 초법적인 정책들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에 대한 정책시각도 굳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긍정적 측면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재고해 볼 문제다.

능력에 앞서는 의욕은 파탄을 불러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신(愼), 신(愼), 신(愼).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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