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석-마루

마루는 아파트의 보급으로 우리 네 전통 집구석 중 가장 급속하게 사라져 가는 공간이다.

마루는 처마 아래 지면보다 높게 널빤지를 깔아 사람이 앉거나 이웃 손님을 맞아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일년 내내 읍내에 한번 나가볼 기회가 없었던 시골 아낙들에게는 방물장수를 불러앉히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했다.

마루에 걸터앉은 방물장수는 냉수 한 그릇에 세상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향이 고운 화장품과 장신구를 끝없이 펼쳐놓았다.

농부들에게 마루 밑은 물건을 수납하기에 요긴한 간이 창고였다.

삽.빗자루.곡괭이.우산.장화.수도를 깔고 남은 합성수지 파이프.안 쓰는 화분을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마루 밑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끄집어 내 실컷 놀다가 휙 던져 넣으면 그만인 공간. 집이 따로 없었던 옛날 개들에게는 썩 마음에 드는 자기만의 공간이기도 했다.

나이든 사람들은 지금도 종종 아파트의 거실을 마루라고 부르지만 건축가들은 거실은 마루와 다르다고 말한다.

거실은 옛집의 안방과 마루 그리고 마당의 역할을 조금씩 합친 셈이다.

온갖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거실은 마루와 마당의 역할을 하지만 그 밑에 수납 공간이 없고 아이들이 뛰기라도 하면 당장 아랫집의 항의가 들어온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마당에 움푹한 홈을 만들던 모양을 지켜보았던 마루, 자고 일어난 아이가 마당을 향해 오줌을 누던 마루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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