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제2차대전 치하에서 독일군이 자행했던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다.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필만의 회고록에 토대를 준 작품.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를 연상시키지만 더 영화적이라는 면이 다르다.
전운이 감돌고 있던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천재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중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자 연주를 마치지 못한채 피난길에 오른다.
영화는 참혹한 전쟁에 카메라를 바짝 들이댔다.
"어디로 가는 거죠?…" 공포에 휩싸여 묻는 유태인 여자는 어김없이 독일군의 총알세례를 받는다.
독일군에 들키지 않기위해 아이의 입을 틀어막은 엄마는 아이를 질식사시키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며 절규한다.
독일군들은 유대인들의 목을 천천히 조여온다.
팔에 완장을 차게 하는 것으로 시작해 주거구역을 격리시키고, 마침내는 가스실행 기차에 몰아넣는다.
주인공 스필만은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굴욕적이리만치 살아남는다.
예술가의 모습은 간 데 없다.
덥수룩한 수염,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식량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초췌함은 영화 초반부 피아노앞에서 쇼팽을 치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
"저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라고 웅얼거리게 할 정도로 스필만의 생존은 처절하다.
어쨌든 실제 스필만은 80세까지 살아남았고, 수기를 통해 전쟁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는 먹을 것을 찾아헤매던 스필만이 교사출신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되면서 클라이막스에 오른다.
장교는 스필만에게 피아노를 연주하게 하고, 그는 살기위해 뭉툭하고 거칠어진 손가락을 놀린다.
예술이 아니라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한 연주는 모든 이를 감동시킨다.
포화로 폐허가 된 전장에 울리는 피아노 소리는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는 어떠한 변론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군복을 벗은 인간도 같은 인간일 뿐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맑은 예술혼을 던져놓음으로써 인류의 양심을 뒤흔든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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