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진.중견작가 콩트 릴레이-나그네의 마지막 여행

△제주 출생

△제주대 국문학과 졸업

△1979년 '성 무너지는 소리' 로 문단데뷔(현대문학)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경기도문화상, 기독교문화대상 수상

△'용마의 꿈' '신열' '그림자와 칼' '불임시대' '닳아지는 세월' '배반의 끝' 등 작품 다수

△현 한양대교수 (국어국문학)

"휴대전화 받으시는 분이 한국대학 지 교수님 맞지요?"

아침 식사를 막 끝내고서 하얗게 새벽 눈이 쌓여 있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한가롭게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는데,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온 저편의 중년 남자 목소리는 탁하고 다급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요?"

나는 모처럼 즐기려던 시간을 빼앗아갈 듯한 상대의 목소리에 짜증부터 났다.

"통화가 되어서 다행입니다.

새해 첫날부터 번거로운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혹시, 원천규 선생의 친구 되시죠?"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중학교 동창인 그가 두어 달 전에 내 연구실에 불쑥 찾아온 적이 있었다.

"맞는데요?"

나는 휴대전화를 켜놓은 것이 후회되었다.

모처럼 마련한 휴가인데, 휴대전화까지 지니고 온 자신이 한없이 미련스럽게 생각되었다.

"여기는 서울 하늘병원입니다.

그 분이 아침 일곱시에 돌아가셨는데, 며칠 전에 돌아가신 다음에 선생님께 전해달라는 유품을 남기셨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돌아가셨다니요? 그러면 고인의 가족이십니까?"

나는 그가 죽었다는 말에, 내가 혹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난감했다.

"그 분은 한 달 전에 홀로 저희 병원에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셨는데, 전 총무과장입니다".

나는 눈이 침침해졌다.

어쨌든 전화를 받은 이상, 그리고 내 신분까지 확인된 이상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나는 열두 시까지 병원으로 찾아가겠다고 약속하고서 통화를 끝내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다.

새해 첫 아침에 부고가 날라들다니? 아니 그 친구는 많은 친구 중에 왜 나를 지목해서 자신의 부고를 전해달라고 했던가? 모처럼 번잡스러운 정초를 친구 별장에서 쉬려고 왔는데, 쉴 팔자가 되어야지?

나는 아내에게 사정을 말하고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같이 떠나겠다는 아내를 놔두고, 중학교 동창회 총무인 김 사장에게 원천규의 부고를 전하고 별장을 나섰다.

밤새 쌓인 눈이 얼지 않아서 찻길은 험하지 않았다.

경춘 국도로 빠져 나오자 다시 눈발이 거세기 시작했다.

윈도브러시가 부지런히 치워내도 내리는 눈은 당하지 못했다.

핸들을 꽉 부여잡고 눈이 쌓이는 창을 노려보듯 하는데 죽은 친구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참 묘한 인연이다.

왜 하필 나에게 유품을 전하려는가. 서울에도 50여 명의 중학 동창들이 살고 있다.

동창회장도 있고, 동창들 일을 제일처럼 돌보는 총무인 김 사장도 있다.

나는 동창회에 얼굴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이따금 얼굴을 내밀 정도이다.

10월 마지막 주일이라고 기억된다.

교정의 은행나무 잎이 곱게 단풍이 들었을 때였다.

그러한 가을 정취도 나는 별로 마음두지 않고 가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날은 의외로 나타난 그를 데리고 교문 앞 중국집으로 식사를 하려 연구실을 나서는데 그가 은행나무 단풍을 보더니,

"야, 아름답구나. 사람도 죽어갈 때 저렇게 고울 수만 있다면 죽기도 서럽지 않겠다".

독백처럼 지껄이면서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를 만난 것은 30여 년 만이었다.

고향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대학도 서울에서 함께 다녔다.

졸업 후에 두어 번 만났을까, 그리고 소식이 묘연했다.

"나는 멀리 가 있어도 지 교수 소식 잘 듣고 있었어. 자네가 하는 일에 대한 기사도 빼지 않고 읽지. 그곳에도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미주판이 있으니…".

그는 뉴욕에 살다 두 달 전에 귀국했다고 했다.

"식구들도 같이?"

"식구들? 나 혼자야. 아이들은 그곳에서 다 제 살림을 꾸려 살고 있고…".

"둘만 남았겠군".

"마누라도 먼저 갔어".

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 스치는 짙은 외로움을 보았다.

그렇게 듣고 보니 그는 얼굴이 수척해 보였고, 차림도 추레하였다.

"연구소도 만들고 활발히 활동한다는 소식까지 알고 있어. 요즈음은 어때? 어려움은 없고?"

그가 내 처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으나 별로 즐겁지 않았다.

어느 친구의 도움으로 문을 연 '자연과 인간 관계 연구소'를 말함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인사치레 말로 들렸다.

어쩌면 사소한 내 일까지 알고 있다면서 내게 은밀히 접근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 그 연구소에서 무슨 일자리라도 얻어보려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그는 원래 머리가 영리했고 대학 성적도 우수했다.

유학을 가서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눌러앉았으니까, 세상에 대한 식견도 풍부하다.

그러한 처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연구소에서 일거리를 달라고 했을 때, 인정에 약한 나로서는 물리칠 도리가 없다.

"여기 와서는 무얼 하나?"

나는 그의 근황을 알고 싶었다.

"쉬고 있어".

그는 빙긋 웃으면서 내 연구실을 휘휘 둘러보다가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연구소에서 간행한 책을 보더니,

"이거 좀 읽어 봐도 되나?"

그는 그 책을 집어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마음에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께름칙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서 그와 점심을 하고 헤어졌다.

그가 다녀가고 난 후에 몇몇 동창들로부터 그의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있는 동창들을 거의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를 경원하는 투로 말했다.

보험이나 들어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고, 빌딩 대여업을 하는 친구는 수위 자리라도 얻어달라는 눈치를 보였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점심 한끼 먹고 돌아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 교수님이십니까? 기다렸습니다".

40대 초반인 총무과장은 나를 정중하게 맞더니 전화로 누군가를 찾았다.

"날씨도 험한데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더구나 새해 첫날인데…".

나는 병원으로 오면서 가졌던 갖가지 상상을 다시 해보았다.

친구가 왜 하필 나를 찾았을까.

"유족들에게도 알렸나요?"

나는 미국에 산다는 자식들과 그의 고향 친척들에게 부고를 전했는지 궁금했다.

"유족이라야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선생님께만 부고를 전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예?"

나는 순간 그 친구 장례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선생께서는 한 달 전쯤에 저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셨는데요, 12월 초부터 병세가 악화되어서 입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셨는데요".

나는 그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학교 정원을 걷던 그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그 동안 그의 병간호를 맡았다는 5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부인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께서 와 주셨군요. 혹시 정초라 연락이 안 닿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습니다".

나는 부인이 안심하는 표정을 보면서 더욱 내 처지가 딱했다.

"이걸 선생님께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

부인은 총무과장을 쳐다보았다.

"박 변호사님도 곧 오시겠다고 합니다".

총무과장이 부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모든 장례 절차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부인이 내민 두툼한 봉투를 뜯어보았다.

누런색 봉투에는 봉인이 찍혀 있고, 그 위에 투명 테이프로 밀봉되어 있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녹음테이프가 하나 나왔다.

"들어보시죠. 곧 변호사님이 오실 겁니다만, 미리 들어보시죠. 아마 유언일 겁니다".

총무과장은 서랍에서 녹음재생기를 내놓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프를 끼웠다.

"지 교수 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되어 미안하네".

나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장례 부탁을 녹음까지 하면서….

"내가 죽은 다음에 모든 재산 처리는 박 변호사와 의논하게. 내가 한 세상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얻은 것 중에 남은 것을 자네에게 맡기고 가네. 내 유산 중에 3분지 일은 자네가 지정하는 사회 복지재단에, 나머지 3분지 일을 자네가 지정하는 교회에, 그리고 3분지 일은 자네 연구소에 맡기네. 나는 60년 동안 이 땅에서 즐거운 여행을 이제 다 마치면서 자네에게 짐만 남겨두고 가네".

나는 더 들을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구나 옆에 서 있는 총무과장과 간병부인에게 좀 전까지 가졌던 내 속마음이 보여질까 두려웠다.

계속 녹음기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나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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