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 신앙에 뿌리를 둔 일본 고유의 종교가 신도(神道)고, 신도의 신령을 제사 지내는 곳이 신사(神社)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야스쿠니(靖國)는 일본 내 8만여 신사의 총본산이다.
야스쿠니의 출발은 1870년 메이지 정권때지만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발전한 것은 러일전쟁 이후다.
러일전쟁 전사자 8만8천여명의 위패가 안치되면서 수많은 유족들의 참배가 이어졌고, 제정(祭政)일치적 국교에 버금가는 신앙이 된 것이다.
▲신사에 안치된 위패의 대부분은 태평양전쟁 전몰자들이다.
총 246만6천위(位)중 213만3천위가 그것이다.
나머지가 청일전쟁.만주사변.러일전쟁.중일전쟁 희생자들이다.
침략전쟁의 제물이 된 일본군의 사당인 셈이다.
문제는 전범들까지 이곳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유족회 등 우파세력은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合祀)하는 운동을 벌여 1978년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하는 데 성공했다.
▲야스쿠니는 종교시설이라기 보다 국민 전쟁 학습장이라는 편이 더 적당하다.
도쿄 중심가 황궁 옆 3만3천평 신사에는 '일본 육군의 아버지' 오무라 마스지로 동상, '가미가제 특공용사의 동상', 군마.군견의 위령탑, '군인칙유'(천황이 내린 제국군인의 덕목) 비석 등 전쟁 냄새가 진동한다.
또 이곳 박물관에는 태평양전쟁 때 활약한 제로센 전투기, 러일전쟁 때 사망한 '바다의 군신'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야스쿠니는 제국주의 시절 '침략적 국가주의'를 조장하는 국영신사였고, 지금은 군국주의의 망령을 집대성해 놓은 곳이다.
▲태평양전쟁의 범죄성 때문에 일본 총리들은 함부로 야스쿠니 참배에 나설 수 없었다.
그 금기를 깬 것이 1985년 8월15일의 나카소네 총리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반발로 심각한 외교문제가 되자, 총리 자격 참배는 한동안 사라졌다.
그 불씨가 1996년 7월 하시모토 총리에 의해 되살려졌고, 2001년 8월 13일 고이즈미 총리가 여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14일 세 번째로 이곳을 참배했다.
총리의 신사 참배를 기정사실화 하여 일왕의 참배를 끌어내고, 이어 헌법개정, 군국주의 부활의 수순을 밟으려 한다는 것이 주변국들의 시각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외교문제를 의식, 세 번 모두 기습적으로 참배했다.
한 나라의 총리가 그런 초라한 모양새를 택한 것을 보면 뭔가 한구석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위령신앙에 목을 매는 고이즈미 총리야말로 21세기의 무당처럼 불쌍한 존재로 비쳐진다.
국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길래 고운 얼굴에 자해행위까지 불사하는 것일까. 무당의 칼을 주시해야할 이유이기도하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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