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명동 대구고 맞은편 언덕배기의 남구사회복지관은 매일 낮 12시만 되면 소란스러워진다.
이 복지관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점심시간이라 식사하러 모여든 사람들 때문이려니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소란의 주인공은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도시락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매일 모여드는 주부 6, 7명은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결식아동들의 수호천사이다.
결식아동들이 저녁에 먹을 도시락, 아니 하루 종일을 버텨나갈 도시락을 만들어 내는 것. 일주일 동안 이렇게 모이는 사람은 도합 50여명. 조를 짜 번갈아 음식 만들기를 맡는다.
현옥희(56.대명동)씨는 매주 금요일 조리 당번을 맡는 수호천사 중 한 사람이다.
벌써 3년째. 이 복지관이 생기고 도시락 싸기를 시작할때부터 참여했다.
다리가 불편하지만 싹 비워져 되돌아오는 도시락을 보면 다리 아픈 고통도 잊혀진다고 했다.
"29명이 먹을 도시락을 쌉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단 한번도 29명분의 도시락을 싼 적이 없습니다.
매일 50인분의 밥을 해 도시락에 넣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싸 주는 도시락으로 한끼를 먹는 게 아니라 하루를 버티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락이 '일용할 양식'인 셈이지요". 현씨는 그래도 밥이며 반찬을 더 넣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최근 이 복지관 조리실에는 큰 경사가 났다.
조리 봉사를 해 온 한 주부봉사단이 그 동안의 봉사 업적을 인정받아 이달 초 대구시로부터 자원봉사대상 상금 50만원을 받았고 그 돈으로 보온도시락을 사기로 한 것. 이로써 한겨울엔 조금만 놔둬도 '얼음'이 되기 십상이던 어린이들의 '냉동 도시락' 문제가 해결됐다.
보온도시락을 살 수 있게 한 사람들은 남구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발주부봉사단'. 봉사단 김태화(40) 팀장은 "한번 받는 도시락으로 아이들이 하루를 버텨야 하지만 조금만 놔둬도 찬밥이 돼 아이들은 라면을 끓여 섞어 먹기 일쑤여서 가슴 아팠다"고 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매일 라면을 먹으라고 권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회원들 모두 꼭 보온도시락을 사주고 싶어 해 왔다는 것.
김 팀장 자신도 도시락 조리 봉사에 이만저만 열심이 아니다.
도시락 반찬이 혹 아이들의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돼 초교생인 아들을 데리고 와 수시로 먹여 보며 검증할 정도. 김 팀장은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만 결식아동이 최소 30명은 된다는데 남구 전역 결식아동은 29명밖에 파악되지 않아 도시락 배달도 그만큼밖에 못하고 있다"며 "우리 구에서만 수백명의 어린이들이 배를 곯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도시락을 만들면서도 가슴이 졸여진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락 배달은 조리 봉사로만 해결될 수도 없는 일. 배달 봉사자는 없어서 안될 중요한 손 맞잡이이다.
남구사회복지관에서 배달을 맡고 있는 사람은 10여명. 이들이 매일 돌아가며 배달에 나선다.
더우기 배달 봉사는 차를 운전하고 언덕배기.골목길까지 걸어 다녀야 해 '이직'이 가장 잦은 힘든 3D 봉사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강상구(40.성당동)씨는 2년째, 송혜경(50.대명동)씨는 7개월 넘게 남구사회복지관에서 이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교동시장에서 사업을 한다는 강씨는 "자영업자라 시간 여유가 다른 사람보다 많아 봉사에 참여했다"며, "지난 여름 폭우 때는 정말 아찔한 일도 당했지만 도시락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을 생각하니 홍수 속에서도 발길을 되돌릴 수 없더라"고 했다.
남구복지관 임우현 팀장은 "너무도 고마운 봉사자들의 정성으로 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이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구청에서 지원되는 개당 2천원으로는 도시락을 제대로 만들어 내기 힘들어 많은 이웃들의 후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도시락 지원 사업=대구시내 대다수 복지관들이 식사를 해결 못하는 어린이.청소년.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보내고 있다.
국비.시비에서 한끼당 2천원씩 지원되며, 대구시내에서 도시락을 배달받고 있는 사람은 514명인 것으로 대구시는 집계하고 있다.
도시락 조리.배달에는 600여명이 자원봉사하고 있으며, 조리 봉사 희망자는 비교적 많지만 배달 봉사자 구하기가 힘들다고 복지관 관계자들은 하소연했다.
복지관 관계자들은 또 실제로 도시락 배달이 필요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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