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통신-눈높이 맞추기

정치부 기자들은 종종 취재원인 정치인들로부터 거꾸로 질문을 받는다.

대선 이후 국회의원을 비롯 정치권 주변인사들의 질문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후보의 패인이 무엇이냐"는 게 많다.

물론 딱 꼬집어 이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변화"를 드는 기자들이 적잖다.

"정보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기존 권위를 무너뜨리는 인터넷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결과"라고 한다.

인터넷이 정치판에 던지는 변화를 이렇게 분석하는 이도 있다.

"비밀의 존재를 무력하게 만드는 인터넷의 존재는 정치인과 유권자를 더 이상 상하위로 나누지 않게 하고 유권자로 하여금 정보를 많이 가진 상위개념이 요구하는 선택을 따르지 않게 한다.

인터넷의 실체는 평등이며 인터넷의 시대는 '나와 같은 유(類)'의 정치인을 요구한다"

◈'비범'이 돌 맞는 시대

한나라당의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회원이자 재선의원인 권오을 의원은 "최근들어 유권자들이 나를 자기들과 다른 유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며 위기감을 털어 놓는다.

"선배, 후배, 친구로서 같은 유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지지를 해 준 지역 유권자들이 '여러면에서 나보다 나은 다른 유'로 본다는 것은 위험신호"라고 진단한다.

일부 한나라당 사람들은 대선 패배 후 환골탈태를 요구한 이회창 후보의 뜻을 "자만을 버리고 국민과 같이 하라"로 해석한다.

유승민 여의도 연구소장은 사석에서 자만을 패인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결과의 열세를 인정하지 않은 채 '숨겨진 지지'만을 과신하며 눈높이를 조절하지 못한 안일한 전략을 아쉬워했다.

대선 패배가 굳어진후 한나라당 상황실을 찾은 일부 당원들의 입에서는 "선거운동을 한답시고 호텔에서 밥먹고 나오는 판에 누가 표를 주겠나"라는 쓴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영남의 지역구를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여전히 압도적 지지를 자신하지만 "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도 있다.

다음선거에서의 변화를 우려하는 지역출신 의원들은 "압도적 지지가 여전히 이어질 것으로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추세가 밀물이었다면 언젠가 썰물이 온다"며 "지역구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하는 이도 있다.

◈"국민들처럼..." 속뜻은

한나라당 일각에서 내각제 논의가 이어진 것을 "인식의 차이 탓"으로 보는 의원도 있다.

내각제 논의의 중단을 요구한 의원들은 "영남권 의원을 중심으로 한 중진그룹의 자만과 오판의 소산"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다음 선거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전제아래 정치도의상 맞지도 않고 실현 가능성도 없는 내각제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를 반대한 사람들의 이유에는 "불안하다"는 것이 많았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행동이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노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최대 조건은 '국민과 같은 수준의 눈높이'가 아닐까.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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