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업그레이드 이것만은 버르고 가자-(7) 지역감정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감정의 위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영.호남 지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대선직후 인터넷 사이트에는 노무현, 이회창 후보의 영.호남 득표율을 둘러싸고 지역감정과 연계, 열띤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호남권을 비난하는 쪽은 노 후보에게 95%나 되는 표를 몰아준 것은 일종의 '집단 최면' 상태라고 주장했고, 영남권을 비난하는 쪽에선 유권자 수에다 타향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이 후보에 대한 몰표현상이 오히려 더욱 심각하다는 반론이다.

결국 영남이나 호남이나 지역정서에 매몰돼 있기는 마찬가지로 비쳐지고 있으며 굳이 구분한다고 한들, 오십보 백보 차이에 불과한 셈이다.

지지했던 후보가 낙선한 쪽에선 심리적 공황상태에 까지 빠져들 정도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몰표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즉 자신들은 지역감정과 관계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특정 후보에 대한 몰표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는 데는 무엇보다 이들 지역의 유권자들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호남의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후보가 집권할 경우 과거와 같은 지역차별이 '재연'될 것을, 영남권에선 이같은 차별이 '계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을 수 있다.

과거 지역차별의 상징처럼 꼽혔던 '호남선' 민심이 '경부선'으로 옮아가면서 양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현 정권 출범 5년동안 각종 공직 인사나 국고예산의 지역별 배정과정에서 호남권 편중이 심화된 것으로 지적되면서 영남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다.

게다가 이같은 박탈감은 현 정권들어 충청권과 강원권으로까지 확산되면서 '호남 대 비호남'간의 갈등양상을 보여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남영 숙명여대 교수도 "영호남을 축으로 한 지역갈등 현상은 이번에도 계속됐다"며 "차기 대통령이 지역개발관련 예산배정 등에서 지역간 안배에 실패할 경우 지역감정은 향후 선거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이같은 지역감정이 해소되기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이 일면서 지역감정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적지않다.

장훈 중앙대교수는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지역주의가 많이 해소됐고 영남의 20, 30대에서 노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호남권에서도 몰표현상이 재연됐지만 40대이상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성향에다 20, 30대의 개혁성향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충청권의 투표성향에선 정책공약이 지역감정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 지역의 표심이 노 후보 쪽으로 기울게 된 데에는 행정수도 충청이전 공약이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정책공약을 잣대로 지지 후보나 당을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지역감정 해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심화시켜온 주역으로 꼽혀왔던 정치권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특정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켜왔던 '3김 정치'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역감정은 정치권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 왔고 특히 선거철이면 기승을 부렸다.

평소에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가도 선거철만 되면 중병으로 도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치권에 의해 지역감정이 조장돼온 측면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 시발점은 지난 71년 박정희, 김대중 후보간의 선거전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양 후보진영이 유세전을 통해 내뱉은 말들은 그야말로 가관일 정도였다.

"쌀밥에 뉘가 섞이듯 경상도에서 반대표가 나오면 안된다.

경상도 사람치고 박 대통령을 안찍는 자는 미친 놈이다" "경상도 정권아래서 전라도는 푸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등등이었다.

문제는 지역감정을 통해 정치권은 최대 수혜자가 됐던 반면 일반 국민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돼 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 지역감정이 좀처럼 치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치권의 지역감정 조장 행위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결국 정치권에서 지역주의적 성향을 분리시키는 게 시급한 셈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쉽지않을 것이다.

지역감정을 두고 "만지면 만질수록 커진다"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때문이다.

김용학 연세대 교수는 "지역주의나 지역감정의 핵심적인 문제는 지연이란 연줄을 동원, 정치를 하려는 데 있다"며 "투명하고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우선적으로 지역주의 혹은 지역당을 고착화시켜 온 주요인으로 꼽히는 선거구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나 현직 의원들의 기득권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란 측면에서 간단치만은 않다.

최근 여권에서 제기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만 해도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로 꼽히고 있지만 현재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 되고 있다.

즉 한나라당의 경우 지지기반인 영남권이 잠식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호남권에선 의석을 차지하기가 쉽지않다는 우려감이 깔려있는 것이다.

인사와 예산에서의 지역편중을 막는 것도 시급하다.

각종 공직인사에서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도록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거나 지역할당제 등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산배정 과정에서도 지역간 균형발전 등을 고려, 상대적인 차별감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지방분권화를 실현하는 것도 절실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지역감정과 정치권의 이해득실이 맞물려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그 해소노력이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치권 밖에서 지역감정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민간 단체들의 활동이 전국 순회강연이나 대국민 서명행사로 이어지는 등 갈수록 활기를 띠고 있다.

결국 이같은 노력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높아질 경우 정치권의 지역감정 조장행위를 감시,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봉대기자 jiny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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