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포럼-토론 공화국

"어디 눈 부릅뜨고…"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대체로 토론은 끝난다.

이후부터는 토론의 주제는 간 곳 없고 "말버릇이 그게 뭐냐"느니 하는 매너를 둘러싼 말싸움으로 바뀐다.

목소리 크기로 결판나는 길거리 교통사고 현장에서도 우리 토론문화의 수준은 드러난다.

그렇다면 지식인이 하는 세미나 같은 곳에서는 어떨까. 여기서는 거꾸로 비판의 수준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으로 끝난다.

진리를 위해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진지하게 논쟁하는 원래의 모습은 드물다.

대학교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좀 오래된 90년대 이야기지만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기 소르망이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강연을 했을 때 이야기이다.

강연 후 당연히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침묵뿐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이것이 우리 토론문화의 현주소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토론이고 국회는 그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렇다면 국회는 좀 나을까. 오히려 열 몫 더하다.

토론은 고사하고 욕설과 멱살잡이로 끝나기까지 한다.

오죽했으면 점잖기로 소문난 어느 정당대표가 우리 정치판은 개판이라는 자조를 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대한민국은 토론공화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토론이 일상화되었으면 좋겠다.

더 좋은 결론을 얻기 위해 토론을 활발히 하고 모든 결정도 토론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제의한 것은 '고비용 저효율'의 낡은 정치 청산을 위해 적절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정치평론가의 역설(逆說)이 생각난다.

군사정권은 정권 교체과정은 비민주적이었으나 의사결정은 민주적이었고 민주투사 정권은 정권 교체과정은 민주적이었으나 의사결정 과정은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군사정권은 의사결정 과정에 군대식 참모회의를 도입함으로써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쳤으나 민주투사들은 측근에 의한 밀실에서의 '쏙닥'결정으로 토론과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투사들에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가 안겨진 것 아닌가.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외채(外債)위기니 내채(內債)위기니 하는 정부실패도 군사정권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만 봐도 토론의 중요성을 알수있다.

이런 점에서도 토론의 도입은 시의적절 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치에서 토론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 용어를 통해 알아보자. '통일 대 반 통일' '개혁 대 반 개혁' '전쟁불사론자 대 친북주의자' 등 극단적이고 대결적인 용어만 있고 제3의 길 등과 같은 융화나 상생의 단어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토론과 타협은 없고 대결과 갈등만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러니 지난 대선에서 낡은 정치 청산이 국민에게 어필 할 수밖에.

그러나 토론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이버의 익명성과 그로 인한 언어폭력이 문제다.

토론의 전형이라고 할 영국의회의 경우 품격유지를 위해 '거짓말쟁이'라는 말도 못쓴다.

그런데 우리 사이버에는 어떤가. 또 토론은 당당해야 하는데 자신을 떳떳하게 밝히지 않은 채 토론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권위에 의한 일방적 토론도 곤란하다.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이라는 조순형의원이 한 예를 들었다.

"노 당선자가 정부부처에 대해 예산타령을 하지 말라 했는데 부처도 얘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당선자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토론은 쌍방향일 때만 시너지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다.

이외도 중우(衆愚)정치나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스 등의 예를 들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경험이다.

그러나 진정한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당선자의 의지만 살아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토론공화국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이고 주입식인 교육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고 우리의 가치관도 바꿀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레서터 서로우교수는 "질서를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 사회는 결코 창조적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질서 앞에는 순종만 있고 토론은 있을 수 없다는 간접 시사인 것이다.

장유유서(長幼有序)등과 같은 유교적 가치는 시대에 맞게 재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또 앞서의 기 소르망교수는 "우리나라 노사투쟁은 흔히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데 이는 이들이 사회지도자들로부터 압박 받아온 침묵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닌가"하며 문화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결국 권위주의로는 토론이 이뤄질 수 없고 토론이 없는 곳에는 폭력이 일어나기 쉽다는 지적인 것이다.

노 당선자는 청와대 비서실의 문제점에 대해 "대통령과 참모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 대통령이 고립되어 있고… 토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결재 받고 나면 오류가 있더라도 시정할 방법이 없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이런 초심대로만 가 준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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