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설 풍경 하나

시장에서 펑, 펑, 소리가 잦아지는 걸 보니 설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 위에서 뻥튀기 기계들이 부지런히 돌아가고, 그 옆에선 강정 만드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고막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와르르 쏟아지는 쌀튀밥에 땅콩 한 줌과 엿물로 버무려 널빤지 위에 부어 평평하게 민뒤 칼로 쓱쓱 그으면 네모 반듯한 강정들이 쏟아진다.

비록 설 명절이 옛 같지야 않지만 그래도 설을 앞두고 주부들이 꼭꼭 챙기는 것 중 하나가 강정이다.

지난 70, 80년대만 해도 설이 한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 강정집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북적였다.

뻥튀기 아저씨들은 검댕묻은 얼굴로 신바람나게 튀밥을 쏟아냈고, 쌀 한됫박에 콩 한됫박, 더러는 보리쌀.찐쌀.강냉이 따위를 들고 온 동네사람들은 찬바람 속에 줄을 선채 몇시간이고 기다렸다.

단대목일수록 줄은 길어졌고 펑, 펑, 소리는 한밤중까지 이어졌지만 동네의 그 누구도 소음을 나무라지 않았다.

한 켠에선 훤히 불을 돋워놓고 강정을 만드느라 부산했다.

색다르게 하느라 쌀튀밥에 귤껍질채니 땅콩.튀긴 콩 따위를 섞기도 했고 큰 살림을 하는 집에선 참깨.들깨.땅콩강정을 갖추갖추 마련했다.

늦은 밤, 불룩해진 강정자루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부자라도 된 듯 가벼워보였다.

부지런한 엄마들은 직접 강정을 만들기도 했다.

뚝배기보단 장맛이라고 모양은 울퉁불퉁해도 맛있었다.

격식 차리는 집에서는 유과까지 만들었다.

반면 아이들 오골거리는 집에선 강냉이튀밥을 엿물에 묻혀 갓난쟁이 머리통만하게 뭉쳐 들고다니며 먹기도 했다.

솔솔 대목장 분위기가 나는 시장통의 강정집을 지나치노라면 빛바래진 설날의 한 풍경이 오버랩된다.

고(故) 신현국의 50년대 흑백사진처럼 행여 쌀튀밥 한 줌 얻게될까 기대하며 뻥튀기 기계 주변서 뛰놀던 코찔찔이 아이들, 그리고 길게 줄 서 있던 아줌마 할머니들의 모습이….

찹쌀가루를 기름에 튀긴 전통 유과야 어느 지방에서든 맛볼 수 있지만 쌀튀밥 강정은 대구.경북지역 바깥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출향인들 중엔 설즈음이면 쌀튀밥 강정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대구의 ㅅ씨는 수십년전부터 서울서 살고 있는 칠순의 아버지가 설이면 쌀튀밥 강정을 찾곤해 이번에도 한뭉치 소포로 보낼 작정이다.

겨울철의 동해안 과메기나 대구의 납작만두가 서울의 출향인들에게 향수의 맛이듯 쌀튀밥 강정은 그들에게 비로소 설을 느끼게 하는 추억의 맛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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