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땀.눈물 그리고 우승 뒤돌아본 21년 -(23) 재능 뛰어난 홍승규

83년 삼성에 입단한 홍승규는 지난 90년 은퇴한 뒤 사업가로 나섰다.

하지만 야구를 그만두고 나니 미련이 새삼 되살아났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이나 훈련하다 야단맞는 모습 등 야구에 대한 꿈을 자주 꿨다.

초등학교때 야구글러브를 잡은 뒤 야구선수로만 살아왔으니 그의 삶은 야구와 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업에 뛰어든 초기 많은 돈을 벌었으나 그는 그렇게 흥이 나지 않았다.

야구선수로 뛸 때 안타 하나 치는 것보다 기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그만큼 그는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김영덕 감독 밑에서 선수로 뛸 때 친척 상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는 유니폼 대신 양복을 입고 김 감독에게 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김 감독은 그러라고 한 뒤 돌아서는 그를 다시 불러세웠다.

김 감독은 "아무리 장례식에 참석하더라도 유니폼을 입고 와서 허락을 구해야 될 것 아니냐"며 그를 나무랐다.

장례식에 다녀온 홍승규는 그 뒤 보름 동안 김 감독으로부터 특별훈련을 받았다.

김 감독이 친히 나서 매일 2상자에 들어있는 야구공을 배트로 치면 외야의 홍승규는 공을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녹초가 되었다.

보름간의 특훈이 끝난 뒤 사우나에서 홍승규를 만난 김 감독은 그에게 "네가 장효조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느냐. 발이 늦냐, 타격이 뒤지냐"며 그를 질책했다.

김 감독은 재능이 뛰어난 그를 아꼈고 더 강한 프로근성을 발휘해주길 기대했던 것이다.

홍승규는 "김 감독은 당시 더 발전하길 요구하며 나를 질책했으나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했다.

홍승규는 그런 스트레스를 느끼며 선수로 뛰었다.

그에 비해 이만수는 행복한 선수였다.

홍승규의 대구상고 1년 선배이기도 한 이만수는 고교 시절 매일 학교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뛰어서 갔다.

이만수는 학교가는 도중에 있는 홍승규의 집에 항상 들러 같이 뛰어가자며 그를 채근했다.

야구에 대한 집념으로 뭉친 이만수는 프로에 와서도 화려한 스타로 성공했다.

그처럼 행복한 선수시절을 보냈으니 이만수는 홍승규의 고충을 잘 몰랐다.

그런 이만수도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경기 출장이 뜸해지니 벤치에 앉아있는 괴로움을 알게 됐다.

이만수는 홍승규에게 "벤치에 앉아있는 것이 경기 뛰는 것보다 이렇게 힘들 줄 미처 몰랐다"고 토로했다.

그라운드를 누비다 2시간30분 이상 벤치에 앉아있는 것은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홍승규는 그에게 "형은 행복한 사람이다.

스타로서 화려함도 맛봤고 벤치 선수의 설움도 느꼈으니 그만큼 귀한 경험도 없다"고 말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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