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 도심 통과 방식 문제가 또다시 대구의 최대 갈등거리로 부상했다.
10년을 끌어 온 이 문제는 당초 오는 6월쯤 본격 논의될 예정이었으나, 건설교통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에 21일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앞당겨 시빗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10년간의 갈등=건교부는 1990년 경부고속철 기본계획을 통해 대구 도심은 지하로 직선 통과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동역(칠곡)~동대구역~고모역 사이를 현재의 경부선로와는 전혀 다르게 직선으로 달리면서 지하로 통행토록 하겠다는 것. 경북대 밑을 통과해 동대구역을 거친 뒤 도심을 빠져 나가는 노선이 그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전 도심은 지상 통과로 계획돼 있어서 대구와는 전혀 사정이 달랐다.
그러나 꼭 10년 전이던 1993년에 문제가 발생했다.
건교부가 느닷없이 대구 도심을 지상으로 통과토록 하겠다고 계획을 수정해 발표한 것. 그렇게 되면 경부선로와 병행 통과 외에는 방법이 없는 실정이었다.
계획 수정의 이유는 기본계획대로 할 경우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들고 공기도 길어진다는 것이었다.
대구 시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1905년 현재의 경부선이 개통된 뒤 그러잖아도 도심이 남북으로 양분돼 왔는데 고속철마저 추가된다면 분단 현상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첫번째 반대 이유였다.
고속철은 일반철도와 달라 엄청난 소음과 진동을 일으킴으로써 인접 지역 생활 여건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반발도 뒤따랐다.
대구시의회는 저지 특위를 만들었고 시민단체들은 대책위를 출범시켰다.
◇오는 6월까지 최종안 결정=사태가 만만찮자 건교부는 다시 뒤로 물러서더니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경부선로와 병행 지하화 하겠다고 했다가 병행 반지하화를 거론하더니 경부선로를 따라 가되 일부 구간만 지하화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과정에서 10년이 허비됐고, 내년 4월의 서울~대구 구간 개통 때는 일단 기존의 경부선로를 함께 이용하는 것으로 땜질됐다.
현재까지 건교부가 내놓은 일정은 오는 6월까지 대구 도심 통과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 이를 위해 또다시 전문기관에 연구를 맡겼으며, 그 결과를 대구시민 공청회에 부치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차피 6월쯤엔 이 문제가 대구시민들의 최대 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직 인수위에 건설교통부가 업무 보고를 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문제가 조기 부상했다.
워낙 중요한 문제라 차기 정권의 과제로 이를 알려주지 않을 수는 없었을 터.
그러나 자신들이 전문기관에 맡긴 연구 결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의견을 제시한 것 자체가 자가당착일 뿐 아니라, 전문기관의 연구 결론에까지 미리 방향을 제시하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행동인 것이다.
이때문에 대구시민들의 우려와 반발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차기 정권의 고민=21일 건교부가 인수위에 보고한 의견은 자신들이 만든 4개의 안 중 대구시민들에게는 두번째로 나쁜 안으로 판단되고 있다.
가장 나쁜 것은 경부선과 병행 지상화 하는 것이고, 세번째 나쁜 것은 평리동~신암동 사이 5.8㎞를 지하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교부 안을 덥석 받아들일 정도로 차기 정권에 판단력이 없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이미 고속철의 문제를 넘어 지역 민심을 가르는 정치적인 사안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만약 차기 정권이 대구시민들의 반발을 무시해가며 병행 지상화나 최단거리 지하화 방안을 강행한다면 다른 치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지역민심은 출범 초기에 벌써 노무현 정권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구의 책임 있는 기관단체들도 남의 일 보듯 하고 있어서 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들은 10년 전 왕성한 활동을 한 뒤 지금은 단결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시도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느냐"는 안일함으로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구시조차 시민들의 인심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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