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경부고속철도 대구도심구간 일부만 지하화하는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대구시민과 대구시 및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하는 등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대구시와 한나라당 지역의원이 23일 건교부의 고속철도 건설방안은 대구의 도심발전을 저해한다며 '병행지하화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인수위 에 전달하기로 하는 등 고속철도 대구구간 지하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건교부는 최근 '경부고속철도 대구와 대전 시내구간 통과방안' 을 마련, 인수위에 보고했다.
건교부 보고에 따르면 대구도심구간은 기존 경부선철도와 나란히 건설하되 대구역 인근의 3.2km만 지하로 하고 나머지 구간은 지상이나 고가로 통과한다는 것이 요지다. 건교부는 22일 오는 3월 교통개발연구원의 용역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대구시 등과 협의하고 한차례 공청회를 열어 최종방침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수위에 파견된 건교부의 고위관계자는 이날 "도심구간 지하화방안은 과거 고속철도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에 추진했던 방안"이라면서 "현실적으로 완전지하로 건설할 경우 관리 등에서 위험성이 높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며 완전지하로 건설한 나라는 없다"고 밝혀 인수위가 건교부의 입장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백승홍 의원은 22일 인수위 보고를 앞둔 대구시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기존 경부선과 함께 건설하는 도심구간 병행지하화 공법은 이미 기본적인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이 검토되었다"고 반박했다.
백 의원은 "예산절감과 공기 등의 이유로 병행지하화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대구의 발전을 위해서 병행지하화 공법은 반드시 관철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대구시는 23일 인수위의 요청에 따라 김돈희 도시건설국장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별관의 인수위에 보내, 고속철도 대구도심구간 건설에 대한 대구시의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인수위는 충북 오송과 김천역사 건립문제, 및 대구와 대전도심통과 구간 지하화 논란 등으로 완전개통을 1년3개월여 앞두고 경부고속철도를 둘러싼 쟁점들을 정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 대구시민 반응
22일 건교부가 경부고속철도의 대구 통과구간 가운데 일부(3.2km)만 지하화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구간을 지상화하는 방안을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구시와 시민들은 "대구를 남북으로 양분시키는 최악의 발상"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구시와 시의회는 대통령직 인수위를 방문해 건교부 방안 철회를 요구하고 27일 대구를 방문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이같은 입장을 전달하기로 하는 등 강력 대응키로 했다.
대구시 김돈희 도시건설국장은 "시로서는 건교부의 방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는 건설비용보다 대구의 백년대계를 생각해 이익이 되는 방안을 택해야 하며 이는 전 구간 지하화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교통개발연구원 연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고 당초 계획했던 시민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대구시와 일언반구 논의조차 없이 건교부가 '경부고속철 대구시 통과방안'을 인수위에 보고한 것은 문제"라며 "이번 주 중 인수위를 찾아가 대구시의 반대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의회 이덕천 부의장(대구시의회 건설환경위 간사)은 "분지형 도시인 대구를 고속철이 지상으로 통과하면 도심이 양분되고 지역교통망이 엉망이 되며 시민이 엄청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교부의 방안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27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구 방문 때 고속철 대구통과 지하화를 강력히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경부고속철도 건설 지역자문위원인 최현복 흥사단 대구지부 사무처장은 "'시내구간 3.2km 지하화'라는 건교부 발상은 지하화의 흉내만 내겠다는 것"으로 규정하고 "칠곡지역에서 동대구역까지를 지하 40m로 통과토록 하는 1990년 당초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속철 대구 통과 구간은 전체가 지하화돼야만 고속철 본연의 목적에도 충실하고 대구 발전에도 도움 된다"고 말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 해설='차기정권의 고민'
경부고속철 도심 통과 방식 문제가 또다시 대구의 최대 갈등거리로 부상했다. 10년을 끌어 온 이 문제는 당초 오는 6월쯤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건설교통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에 21일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앞당겨 시빗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10년간의 갈등 = 건교부는 1990년 경부고속철 기본계획을 통해 대구 도심은 지하로 직선 통과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동역(칠곡)∼동대구역∼고모역 사이를 현재의 경부선로와는 전혀 다르게 직선으로 달리면서 지하로 통행토록 하겠다는 것.
경북대 밑을 통과해 동대구역을 거친 뒤 도심을 빠져 나가는 노선이 그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전 도심은 지상 통과로 계획돼 있어서, 대구와는 전혀 사정이 달랐다.
그러나 꼭 10년 전이던 1993년에 문제가 발생했다. 건교부가 느닷없이 대구 도심을 지상으로 통과토록 하겠다고 계획을 수정해 발표한 것. 그렇게 되면 경부선로와 병행 통과 외에는 방법이 없는 실정이었다. 계획 수정의 이유는 기본계획대로 할 경우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들고 공기도 길어진다는 것이었다.
대구 시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1905년 현재의 경부선이 개통된 뒤 안그래도 도심이 남북으로 양분돼 왔는데, 고속철마저 추가된다면 분단 현상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첫번째 반대 이유였다. 고속철은 일반철과도 달라 엄청난 소음과 진동을 일으킴으로써 인접 지역 생활 여건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반발도 뒤따랐다. 대구시의회는 저지 특위를 만들었고 시민단체들은 대책위를 출범시켰다.
◇오는 6월까지 최종안 결정 = 사태가 만만찮자 건교부는 다시 뒤로 물러서더니 오락가락 하기 시작했다. 경부선로와 병행 지하화 하겠다고 했다가 병행 반지하화를 거론하더니 경부선로를 따라 가되 일부 구간만 지하화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과정에서 10년이 허비됐고, 내년 4월의 서울∼대구 구간 개통 때는 일단 기존의 경부선로를 함께 이용하는 것으로 땜질됐다.
현재까지 건교부가 내 놓은 일정은 오는 6월까지 대구 도심 통과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 이를 위해 또다시 전문기관에 연구를 맡겼으며, 그 결과를 대구시민 공청회에 부치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차피 6월쯤엔 이 문제가 대구시민들의 최대 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직 인수위에 건설교통부가 업무 보고를 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문제가 조기 부상했다. 워낙 중요한 문제라 차기 정권의 과제로 이를 알려주지 않을 수는 없었을 터.
그러나 자신들이 전문기관에 맡긴 연구 결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의견을 제시한 것 자체가 자가당착적일 뿐 아니라, 전문기관의 연구 결론에까지 미리 방향을 제시하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행동인 것이다. 이때문에 대구시민들의 우려와 반발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차기 정권의 고민 = 21일 건교부가 인수위에 보고한 의견은 자신들이 만든 4개의 안 중 대구시민들에게는 두번째로 나쁜 안으로 판단되고 있다. 가장 나쁜 것은 경부선과 병행 지상화 하는 것이고, 세번째 나쁜 것은 평리동∼신암동 사이 5.8km를 지하화 하겠다는 것, 가장 나쁜 안은 병행 지상화안이다.
그러나 건교부 안을 덥썩 받아들일 정도로 차기 정권에 판단력이 없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이미 고속철의 문제를 넘어 지역 민심을 가르는 정치적인 사안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만약 차기 정권이 대구시민들의 반발을 무시해가며 병행 지상화나 최단거리 지하화 방안을 강행한다면, 다른 치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지역민심은 출범 초기에 벌써 노무현 정권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구의 책임 있는 기관단체들도 남의 일 보듯 하고 있어서 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들은 10년 전 왕성한 활동을 한 뒤 지금은 단결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시도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느냐"는 안일함으로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구시조차 시민들의 인심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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