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구촌의 50대-그리스의 마키스 산데스

아테네의 택시운전사 마키스 산데스(59)씨. 군에서 막 제대하던 때부터 운전을 시작한 그는 벌써 35년 이상을 택시와 함께 살아왔다.

가난하지만 한 번도 남을 속이거나 이용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언제나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살았다는 자부심은 그의 얼굴을 언제나 활짝 펴주고 있다.

이제는 다 자라서 성년이 된 세 아들이 취직하여 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이 한결 나아졌다고 마키스의 부인이 한 마디 거든다.

그리스에서 서민층에 속하는 마키스 가족에게 가난은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가 돼버렸다.

다소 환경이 좋은 중산층지역에서 운 좋게 낮은 집세 덕분에 10년을 살 수 있었지만 갑자기 집주인의 마음이 바뀌어 집세를 올려 받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 지역으로 이사와야 했던 것이 가장 큰 서러움이었다고 한다.

마키스씨의 어린 시절은 힘들었다.

병든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세 자녀를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던지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가출했다.

그 후 그는 지방에서 어린 나이에 수도 아테네로 올라와서 자리를 잡았던 누나의 보호아래 자랐다.

초등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하고 기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아르바이트일을 하면서 기술학교를 다녔는데 결국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그만뒀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원망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고등교육까지 받았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마키스의 인생은 완전히 역전됐다.

인터뷰 도중에도"어머니만 살아계셨더라면…"하면서 말끝을 잇지 못하는 일이 여러번 거듭될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너무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지난 날을 회상하는 그의 눈은 계속 붉어져 있었다.

사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어릴 때 마키스를 보살폈던 누나도 그의 옆에서 함께 기억을 더듬어주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열 여섯살이 되던 해, 그는 친구들과 벽돌공장에서 일하면서 벽돌 찍어내는 일을 했다.

몇 년을 그렇게 일하다 군에 입대하여 2년을 보낸 후 제대했다.

제대와 동시에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기술학교에 복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그 길로 운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동안 갈등도 많았지만 이제는 운전이 그의 천직이 돼버렸다.

택시와 함께 수십 년을 보냈기 때문에 복잡한 아테네의 길거리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을 정도다.

아테네에 살면서 택시를 종종 이용하는 필자는 운전사들을 이해하고 남는다.

옛날 도시인 아테네에 무계획적으로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에 도로사정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10분 거리가 30분 거리로 바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 도로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를 들이키면서 택시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라면서 마키스는 교통체증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아테네의 교통사정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운전사들의 불친절과 바가지는 더 심해진다.

부정직한 택시운전사의 태도를 비판하자 "좋은 운전사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운전사들도 있다"면서 동료들을 감싸기도 했다.

비록 지난 시절은 다시 돌아보기도 힘겨울만큼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그같은 상처를 극복하고 지금은 아테네의 운전기사로서의 자기 자신에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있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을 속인 적이 없이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그의 아내가 "그러니 돈을 못 벌지"하면서 불평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도 정직하고 성실한 남편의 삶이 내심 자랑스러운지 그냥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제 퇴직이 다가오는 마키스씨는 벌써 인생의 황혼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새해에는 내 집을 장만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쑥스럽게 밝히며 미소짓는 그의 얼굴에는 자기 인생의 승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었다.

하영식(자유기고가) youngsig@teledom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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