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립사회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마리아 타누풀루 박사는 올해 50대의 나이에 진입했다.
겸손하고 수수한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얼핏보면 누구도 그가 그리스 최고의 사회학자 중 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다.
지금까지 사회학자로서 타누풀루 박사가 직접 저술한 책만도 다섯권이나 된다.
모두 사회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다룬 책인데 이것을 위해 들인 노력은 엄청나다.
처음으로 출판된 책은 자신이 직접 레프카다 섬에 가서 섬주민들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빨치산들의 삶을 구술한 '구전회상'이라는 책이다.
지금은 프랑스어로도 출판된 상태이며, 앞으로 반응을 봐서 영어로도 출판할 예정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여성과 청소년들의 인권문제를 다룬 내용이다.
특히 여성 재소자들과 청소년 재소자들의 출소 후 사회의 적응문제를 다룬 보고서 성격의 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재소자들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음을 털어놓았다.
"어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상황을 모두 사회의 조건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었고, 나에게 화를 낼 때도 있어 분위기가 험악할 때가 많았다"고 자기 직업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타누풀루 박사는 중산층가정에서 아무런 어려움없이 자라났다.
아버지는 판사였고 어머니는 문학인이었는데 교육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3명의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들어주었다.
더군다나 딸인 타누풀루 박사를 파리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준 것도 부모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유난히 잘 했던 그는 아테네 법대에 들어가서 법학공부를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획득했지만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조인의 길을 마다하고 사회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좌파선풍이 불던 1970년대의 대학시절, 그는 공산당청소년연맹에 가입해서 활동한 적도 있었다.
그의 학생시절의 활동이 법학보다는 사회학으로 방향을 돌렸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계속 사회학분야에만 매달린 후 끝내 파리에서 박사학위까지 얻었다.
1981년 파리에서 돌아온 후로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사회학 학위로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대학의 강단에 서기를 원했지만 삶이 인도하는 대로 연구소에 자리를 얻은 후 그냥 계속 머물러왔다.
20년을 연구원으로 살아온 셈이다.
"연구원으로서 연구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연구성과가 정부정책에 반영됐을 때 비로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대개 연구성과는 한 쪽 구석에 팽개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섭섭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타누풀루 박사는 아직 미혼이다.
화려한 싱글인 셈. 물론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포기해 본 적은 없지만 제도적인 결혼을 반대했던 자신의 사고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늦은 나이까지 공부하느라 혼기를 놓쳤고, 나중에는 부모들의 병구완까지 도맡아야 했던 여러가지 삶의 환경들이 자신이 미혼으로 남게 된 이유같다고 말했다.
"50세의 문턱에 접어들면서 느끼는 게 많아요.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이것저것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런 삶의 파편들이 이제 하나의 큰 모자이크가 되어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타누풀루 박사는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삶이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내적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고 싶어요".
하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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