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알타미라 동굴처럼 거대한 사원의 폐허처럼

굳어진 죽은 바다처럼 여자들은 누워 있다.

새들의 고향은 거기.

모래바람 부는 여자들의 내부엔

새들이 최초의 알을 까고 나온 탄생의 껍질과

죽음의 잔해가 탄피처럼 가득 쌓여 있다.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최승자 '여성에 관하여'

최승자의 동굴(자궁)은 어딘가 허무의 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그곳은 탄생이면서 죽음도 함께 땀 흘리는 폐허의 사원이다.

굳어진 죽은 바다이면서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변증법의 세계이다.

우주 에너지가 결부된 밝은 탄생의 가치는 차츰 사라지고 불임의 빈 동굴 같은 허전함이 놓여 있다.

탄생의 껍질과 죽음의 잔해가 쌓이게 한 남성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현대 여성은 그렇게 묻고 있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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