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업그레이드 이것만은 버리고 가자-(11)지역인재 유출

2003학년도 정시모집 전형이 끝나지도 않은 지난 20일 대구의 한 유명 재수학원. 3명의 학부모가 진학지도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연은 한결같았다.

지역 한두개 대학에는 합격할 것 같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은 힘들 것 같아 일찌감치 재수를 시키려 한다는 것. 한 학부모는 지역의 의대 합격이 확실하지만 서울 소재 의대에 보내려 한다고 해 충격을 줬다.

학원 관계자는 "이달 들어 매일 10여명씩 찾아오는데 대부분 수능 1, 2등급을 받은 수험생 학부모"라고 했다.

지역 고교와 대학, 입시기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진학, 편입학 등의 이유로 해마다 대구를 떠나 서울로 향하는 고교 졸업생, 대학생, 대학원생 등이 최소한 5천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와 경북 교육청 관계자는 특히 고교 졸업생 가운데 수능 1등급을 받은 최상위권의 70%이상이 고향을 떠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다 지역 대학을 졸업한 뒤 수도권 등지로 취업하는 고급 인력도 상당수임을 감안하면 대구·경북은 수도권 인력 공급기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9월 한 취업정보업체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되짚어보자. 300명 이상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756개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물은 결과 채용해놓고 보면 서울의 대학과 지방대 졸업생간 업무 능력에는 차이가 없으나 채용 때에는 서울 소재 대학-지방 국립대-지방 사립대라는 우선순위가 분명하다는 것. 근거도 불투명한 채용 경향으로 인해 이들 기업 가운데 지난 2년 동안 지방대 졸업자를 30% 이상 채용한 기업은 절반도 되지 않는 결과가 빚어졌다.

21.9%의 기업은 전체 채용인원의 10% 미만만 고용했다.

김국현 경북도교육청 부교육감은 개인의 능력이나 특기보다 출신 학교 간판을 우선하는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도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니 대학이나 학과가 좀 못마땅해도 무조건 서울로 보내고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차라리 지역 대학의 적성에 맞는 학과에서 실력을 키우는 게 훨씬 전망이 밝은 현실을 잘 살펴야 합니다".

다행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검토중인 일련의 지방분권 관련 정책들은 이같은 인식 변화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수위는 현재 지방대 출신을 공직에 일정 비율 할당하는 방안, 지방대 출신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서울대 수준의 지방대 다수 육성, 지역 단위 산학연 특화 프로젝트 창출 및 집중 지원 등을 고려중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지원과 사회의 인식 변화만 무턱대고 기다려서는 지역에 인재가 갈수록 마르고 지방 출신이 홀대받는 현실을 극복하기 힘들다.

지방 스스로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제기되는 것이 지방 대학들의 취약한 경쟁력이다.

다른 학교 출신을 배척하고 모교출신을 선호하는 교수 선발, 실력 있다 싶으면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떠나가는 교수 등 대학 구성원들의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취약하기 짝이 없는 연구 여건도 문제. 여기에는 중앙정부가 대학별로 몇 개의 프로그램을 선정해 시설비나 대 주는 생색내기식 지원을 상당 기간 계속해온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적잖다.

윤덕홍 대구대 총장은 "시설이 있어도 교수들의 연구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조교와 연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해소해줘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우수 인력들을 지방대학의 연구진으로 취업시키는 데 중앙정부의 지원을 모으면 지방대 경쟁력 강화와 고학력 실업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입시를 담당하는 고교 교사들과 입시기관 관계자들은 비대해진 지방대의 구조를 문제삼았다.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편승해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단과대와 학과를 늘려 백화점식으로 운영함으로써 덩치만 커졌을 뿐 질적으로는 퇴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윤일현 일신학원 진학지도실장은 "고교 때까지 이름도 못 들어본 대학, 그 대학에 있는 줄도 몰랐던 학과에 진학한다는 수험생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대학들도 이젠 생존을 위해 기업과 마찬가지로 경쟁력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기업과 인재 유치에 뒷짐지고 있는 지방정부와 산업계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경북대 공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몇 년전 서울에서 창업한 ㅈ씨는 "수도권에 집중된 시장과 정보에 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지방으로 내려가기엔 메리트가 너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만 해도 부지와 건물 편의를 제공하면서 기업을 유치하려는 지자체가 많다 보니 지방의 유망한 중소·벤처기업들이 오히려 수도권으로 옮기거나 지사, 공장 정도는 수도권에 여는 추세가 고착화됐다고 했다.

겉도는 산학연계 인력 양성, 취약한 인재 풀, 수도권 상향식 인재 교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지방정부와 학계, 업계가 힘을 모아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윤덕홍 총장은 "지역의 주요 기관은 물론 분야별로 활약하는 지식 그룹 리더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다양한 행사를 통해 끊임없이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수도권은 물론 국제무대로도 인재를 내보내고, 지역의 여론을 반영하게 만들고, 언제든 돌아와 지역인재 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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