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신혼여행 사진

해가 바뀌면서 묵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책장 정리를 했다.

한해 동안 읽은 책들을 종류별로 꽂기 위해서 책을 이리 저리 옮기다가 헌 책갈피에서 사진이 한장 툭 떨어졌다.

세월의 물결에 색이 바랜 신혼 여행 때 찍은 사진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신혼 여행 사진 중에서 가장 잘 된 사진으로, 혼자 전방 군복무 기간 중 아내 대신 그 책갈피 속에 넣고 갔던 사진이었다.

아내의 어깨 위에 다정스레 올린 팔이 어딘가 좀 어색해 보이지만, 역광으로 눈부시게 피어나는 갈대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우리의 모습은 그 배경의 갈대꽃만큼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것은 바로 세월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젊음의 아름다움이었다.

젊고 희망에 찬 밝은 표정이 주는 생동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인연이 되어 살을 맞대고 살아온 지가 벌써 20년이다.

내가 처음 아내를 보자마자 결혼을 결심한 것은 그녀의 외모나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 아내를 본 순간 오래 전부터 나의 아내로 있어 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전생의 인연이나 천생의 연분을 따지지 않아도 막연히 나의 아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후 결혼해 같이 살면서 우리는 서로 너무나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다툼으로 서로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며 기쁨보다는 오히려 슬픔을 더 많이 안겨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부대낌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가꾸어지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선택 이 후에 서서히 자라나는 것이다.

사랑은 마술과 같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씨 뿌리고 거름주며 비바람과 뙤약볕 속에서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이름이 내 가슴에 들어와 이렇게 꽃이 되기까지 2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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