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은 대구를 많이 닮았다.
16세기 중국 푸젠성의 한족이 이동해 세운 타이난은 1683년 청나라에 의해 점령된 뒤 200년간 타이완의 중심도시 역할을 했다.
타이완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대구가 지난 400여년 동안 지금의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대구, 경북, 부산, 경남, 울산)를 통괄하는 중심도시였던 것과 비슷하다.
자난평야를 가진 타이난은 면방직과 파인애플, 제당, 알칼리 공업 등 주로 농업을 바탕으로 한 경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대구가 오랫동안 섬유도시로서 각광을 받았던 것과 유사하다.
대구와 타이난은 또 이같이 비슷한 역사적 문화적 유산 때문인지 인근에 대학이 유달리 많고,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대구와 경북에는 경북대, 영남대, 포항공대, 안동대, 금오공대를 비롯한 50여 개의 크고 작은 대학들이 들어서 있고, 타이난에는 국립천공대와 국립선야센대를 포함해 14개의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집중해 있다.
1990년대 타이난은 대구와 똑같은 고민에 빠졌다.
1950~1970년대 농업과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1980년 이후 첨단산업 위주로 급변하면서 모든 산업과 우수인력이 수도(타이베이와 서울)로 집중됐다.
신주과학단지의 성공은 타이완의 남북경제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경북대 전기·전자·컴퓨터학부 출신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IT(정보기술) 분야의 중추세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들을 배출한 대구에는 일자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공계 분야에서는 타이완 최고를 자부하는 국립천공대 출신들도 고향을 버리고 일자리를 찾아 타이페이와 신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타이완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타이완섬을 아시아의 연구개발 및 기술혁신의 중심인 '실리콘섬'으로 만든다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더 이상 지역간 불균형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 1992년 1월 또 하나의 과학단지(science-based industrial park)를 만드는 계획을 승인했다.
15년 계획으로 추진되는 타이난과학단지 조성작업이 시작된 것은 1996년. 대구 및 경북 테크노파크를 포함, 우리나라의 시범테크노파크 사업이 시작된 것보다 2년 빠르다.
타이난과학단지의 규모는 초기개발 650ha(195만평)를 포함, 모두 2천650ha(795만평). 예정 개발기간의 3분의1이 지난 지금 타이난과학단지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5년간 대구의 밀리노프로젝트처럼 하드웨어 구축이 중심이 됐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포스트 밀라노프로젝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가 타이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일까.
물론 그동안 타이난과학단지는 거대한 사탕수수밭의 수용과 토지정리, 도로 및 다리 건설 등 하드웨어 인프라 구축에 많은 비중을 뒀다.
지금도 타이난 단지 곳곳에는 각종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그러나 지역경제에 미치는 투자의 효과가 나타난 것은 바로 타이난과학단지 건설에 착수한 시점부터였다.
건설분야 활황에 따른 지역경기 부양효과만이 아니다.
1998년 이전에 이미 23개의 첨단기업이 타이난단지로 입주한뒤 1999년 6개, 2000년 17개, 2001년 19개, 2002년(10월) 22개 등 지금까지 87개의 최첨단기업이 입주했다〈도표참조〉. 2002년 10월 현재 입주와 투자를 논의중인 업체는 18개(집적회로 1개, 광전자 5개, 생명공학 4개, 통신 2개, 정밀기계 6개)로 예상투자액은 740억원에 달한다.
입주기업 71개(건설중인 업체 16곳 제외)의 2001년 매출은 1조8천500억원. 지난 해 8월까지 매출만 2조4천800억원을 기록해 급성장하는 첨단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용효과도 벌써 1만4천명을 넘어섰다.
"도로, 다리, 주거, 교육시설 등 기반시설이 속속 완공됨에 따라 타이난과학단지의 매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입주를 원하는 기업의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는 게 타이난과학단지 관리국 직원 조지 호씨의 설명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당초 15년이었던 타이난과학단지 조성 완료 시점이 10년만인 2005년말 쯤으로 앞당겨 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본격 가동될 쯤 타이난과학단지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및 정밀기계: 생산액 5조5천200억원, 고용 7천명 △반도체: 생산액 33조2천400억원, 고용 3만명 △농업생명공학: 생산액 8천220억원, 고용 860명(이 가운데 일류 생명공학자 360명 포함)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타이완 남부지역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던 우수인재들의 'U턴' 현상도 가시화되고 있다.
타이난과학단지 87개 입주기업 중 25개가 신주단지에서 확산된 기업인 만큼 신주와 타이베이 지역에 근무하던 많은 타이완 남부출신 인재들의 귀향행렬에 발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천공대를 비롯한 타이난 인근지역 및 타이완 남부지역 대학졸업자들도 타이난과학단지에서 매년 5천~7천개씩 생겨나는 첨단 일자리 덕분에 취업걱정을 한숨 덜게 됐다.
천춘웨이 타이난과학단지 관리국 부주임은 "타이난과학단지는 신주과학단지의 성공모델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한데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분담이 잘 이루어져 계획보다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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