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鄕歌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는 '한(恨)'이라 한다.

다른 민족에게는 이런 독특한 정서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번역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의 특징은 남에게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해도 되갚음을 하기보다는 '가슴 속 응어리'로 떠안은 채 살아가는 정서이다.

그 뿌리는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역사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빈번한 외세 침입과 내란, 엄격한 신분사회 등으로 이 땅의 서민들은 한을 품고 살아야 했다.

지금도 세계에서 시(詩)가 가장 많이 읽히는 연유도 감정을 최대한 응축시킨 시가 한의 정서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리라.

▲그 연원은 신라로 거슬러 오른다.

승려 신충(信忠)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효성왕에 대한 한을 향가(鄕歌)로 지어 나무에 걸어놓았더니 나무가 죽었다는 고사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한다.

임금이 뒤늦게 깨닫고 신충을 불러 벼슬을 내리자 죽은 나무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이 설화는 사람이 품은 원한의 두려움과 함께 그것을 풀어내는 해원의 슬기를 가르친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장안사 주지 지정(智正) 스님이 향가를 풀어 써서 만든 책자 5천여권을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나눠줘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헌화가' '처용가' '찬기파랑가' '서동요' '제망매가' '모죽지랑가' '도솔가' '공덕가' 등 25수를 한글 풀이와 해설을 곁들여 엮은 이 책자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이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만들어졌으며, 실제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들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덕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 스님의 주장대로 향가는 짧은 노래지만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는 정서적 뿌리이며, '숭고하고 평화로운 노래'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되갚음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큰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덕목이라면, 향가를 고리타분한 옛 노래로 여길 게 아니라 새롭게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을 게다.

더구나 향가의 수사는 순진·원융(圓融)할 뿐 아니라 저속하거나 침음(沈陰)하지 않고, 안으로는 씩씩한 기상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너무나 각박하다.

풍속이 해이되고, 윤리·도덕과 사회 기강은 땅에 떨어졌다.

경제는 회생이 잘 되지 않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가 하면, 불신풍조도 만연해 있다.

누군가가 이를 '한국병'이라 했다.

'제망매가'에서도 숭고한 마음과 종교를 뛰어넘는 사람의 정(情)을 읽을 수 있지만, 사청구려(詞淸句麗)하고 기의심고(其意甚高)하면서도 사람의 애틋한 정까지 떠올리는 향가를 돼새겨 볼 일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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