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터부(禁忌) 중 하나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世不同席)이었다.
1777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쓴 여행기를 보면 타히티섬에서는 남녀가 놀 때는 같이 놀아도 밥 먹을 때는 따로 먹어야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한가한 터부는 정적(靜的)인 농경사회서나 가능한 일이지 동적(動的)인 산업화나 정보화사회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터부는 깨졌다.
한마디로 터부는 시대에 따라 질서와 가치는 바뀌고 이에 따라 터부도 깨지게 마련이다.
세계로 눈을 돌려봐도 그렇다.
2001년 말 일본 아키히토 왕은 "간무천황의 어머니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만세일계를 지키기 위해 일본서는 터부시 해오던 말이었다.
또 독일에서는 그동안 금기시 해오던 독일인 희생에 대한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귄터 그라스가 낸 '게 걸음으로 가다'가 그것이다.
가해자로만 그려졌던 과거사에 대한 터부가 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외도 유럽은 복지국가다라는 자존심 때문에 삼가해오던 이민문제 침묵터부가 깨졌나 하면, 종교단체가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인간복제에 이르기까지 터부시 되어오던 문제들이 이렇게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만화작가 이현세씨는 '천국의 신화'라는 작품을 통해 기성의 가치가 그어놓은 음란의 터부를 넘었다.
5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또 지난 16대 대선에서는 이데올로기 터부가 깨졌다.
'과연 진보의 승리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보수가 70%이므로 진보로는 안 된다는 진보필패론은 완전히 빗나갔고 이제는 거꾸로 '보수의 간판으로는 어렵다'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지난해 월드컵 대회 때 붉은 악마의 응원에서 레드 콤플렉스나 레드 터부가 사라지면서 예견되었던 일이기도 했다.
최근 이화여대에서는 57년 만에 금혼이라는 금기가 폐지되었고 동성연애는 일종의 사회적 터부였으나 이를 깨고 이제는 떳떳한 사회일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1999년 교육부가 '동성애를 불건전한 성문화, 에이즈의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는'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깜짝 놀랄만한 변화다.
그러나 소망스런 터부의 붕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부터 우리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스승의 그림자를 밟는 것쯤은 예사고 예외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욕설은 물론 구타까지 있다니 기가 막힌다.
어쩌다 교사가 매를 들기라도 하면 학생은 "선생님 돈 많아요"한다니 우리나라 교육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 . 스승의 매가 바람직한가 아닌가하는 찬반논쟁 이전의 문제다.
스승의 권위에 대한 터부가 무너져도 너무 무너진 것 같다.
문화에서 터부파괴도 문제는 있다.
저급한 키치문화가 고급문화를 몰아내고 주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급문화는 주류로 될 수 없다는 터부를 깬 것이다.
그래도 이런 터부의 붕괴가 있었기에 노무현 당선자측이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 정치나 등거리 정치 그리고 국민참여제, 토론공화국 같은 개혁정치가 가능해진 것 아닐까. 이렇게 볼때 터부는 적을수록 좋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생활터부도 무너지는 판에 독재자의 코털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눈치 터부같은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터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가 적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터부를 깨는 것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혼란도 일고 반발도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깨어져버린 기존의 터부 즉 깨어진 질서의 가치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남녀칠세부동석이 깨어졌지만 이것이 상징하는 순결성과 같은 가치는 존중되어야 한다.
시대적 요청이 남녀칠세동석의 효율성이나 창의성을 남녀칠세부동석의 순결성보다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순결성의 가치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가치가 살아 있어야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다원화 시대에 맞는 상생의 길이 아닐까. 또'나만이 옳다'는 이념적 교조주의자는 열린 사회의 적이라는 칼 포퍼의 경고에 유의할 필요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터부를 깬다는 것은 바로 벽을 허문다는 의미도 된다.
벽을 허물다 보면 격(格)을 허물수도 있다.
인터넷 정치나 대중목욕탕 출입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듯하다.
그러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격이 허물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물론 벽은 허물되 격은 허물어지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벽을 허무는 것이 바로 평범의 시대, 보통의 시대, 민(民)의 시대를 위한 변화이자 개혁이 아닌가.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대경쟁의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국가간 경쟁은 기술개발에 이어 제도경쟁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 부분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미국도 변하는 현실과 제도 사이의 불일치를 겪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한발이라도 앞서 나가기 위해서도 벽의 하나인 터부는 허무는 것이 좋다.
서상호〈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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