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북아 허브도시 포항-(5)철강산업단지

207개 업체에 상시 근로자 1만6천100명, 2002년 총매출액 6조5천억원. 머리카락만큼 가는 피아노줄에서부터 수십만t 짜리 선박을 만드는 후판(厚板)까지, 쇠로 만들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생산하는 포항철강산업단지(이하 철강공단)는 포스코와 함께 포항경제를 이끄는 한 축이다.

포스코가 철판이나 철판 가공용 소재인 슬래브(Slab).블룸(Bloom) 및 각종 선재류 등 철강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반제품(半製品) 제조업체인 반면 제철로를 사이에 두고 330여만평 부지에 빼곡하게 들어선 공단 업체들은 철사, 자동차 부품 등 각종 완성품 및 포스코에서 빠져나오는 철강 부산물로 제2, 제3의 제품을 생산하는 완제품 메이커들이다.

포항에 철강공단이 들어선 것은 1970년. 현재의 1, 2, 3단지 외에 포스코에서 냉천(冷川) 건너편 포스렉, 한국주철관, 제철화학 등이 입주해 있는 청림지구까지가 공단의 영역이다.

철강공단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포스코와 연관돼 있다.

송종봉 관리공단 이사장은 "포스코도 혼자 존재할 수 없고 공단 업체들도 홀로 설 수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그는 "포스코와 공단 업체들은 상호간 수요업체(고객)이면서 공급사가 되는 관계"라고 부연했다.

포스코와 INI스틸의 경우, 포스코가 생산하는 강판의 품질을 좌우하는 압연용 롤(Roll)은 INI가 생산해 공급하고, INI가 독점 생산하는 철도레일은 포스코가 만든 블룸이 원자재다.

즉, 누가 누구에게 종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병립(倂立)하면서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철강공단도 IMF 위기를 겪었다.

지난 97년 이후 공단에서 일부 업체는 간판을 내리기도 했고 일부 업체는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퇴출되기도 했고 일부는 실직 이후 아예 이 지역을 떠나기도 했다.

지금 포항시와 지역 유지들이 '포항의 인구가 줄어든다'고 법석을 떠는 실직적인 이유가 공단업체들의 인력구조조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외지유입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공단경제를 활성화하고, 업체들의 경제력 신장을 위해 행정이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현실적 대응책을 제시하는 인사들이 많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는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런 전후 사정은 연도별 공단내 근로자 숫자 변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IMF 사태 첫해였던 지난 97년 공단에서 일하는 상시 근로자는 1만9천명이었다.

'칼바람'이 극심했던 98년 한해 동안 무려 3천명이 퇴출당했다.

이후 경기가 서서히 회복세로 반전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공단근로자는 1만6천명대에 머물러 옛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IMF 와중에서 공단경제의 침체는 시내 경제의 침몰을 암시하는 전주곡 역할을 했다.

몇몇 공단 업체가 무너지고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자 시내 식당도, 술집도, 다방도, 죽도시장이나 중앙상가 상점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강희 관리공단 상무는 "포스코와 연관단지(포항 사람들은 공단지역을 이렇게 부른다)가 포항을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한쪽이 무너지니 다른 한쪽이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철강공단이 포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막대한데도 포항의 모든 사안(事案)들이 워낙 포스코 일방향(一方向)으로 기승전결(起承轉結) 되는 탓에 본래의 빛이 가리워져 있다는 것은 일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포항JC 최종석 회장은 "이제는 포항 시민들이 잠자는 공단을 깨워야 할 때"라는 말로 '공단 역할론'을 제기했다.

6조5천억원의 매출액이나 1만6천명의 근로자는 포스코보다 더 큰 규모인데 왜 공단업체들은 중요 사안에서 빠지고, 발뺌하느냐는 말의 우회적 표현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포스코가 공기업 신분으로 출발한 탓에 일면 과도한 책임을 떠맡았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며 "중소기업을 제외한 공단내 대기업들도 지역협력 등 지역 기여를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갖출 때"라고 지적했다.

과연 철강공단에는 어떤 업체들이 입주해 있나?

이같은 물음에 정작 포항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같은 포항시민들 중에서도 즉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지역민들도 포스코만 쳐다봤지 숨은 보배라 할 수 있는 공단업체를 외면했다는 일부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7개 업체중 상당수는 지역에서 보다 오히려 외지나 전국에 펼쳐있는 관련 업계에서는 호평받는 업체들이 많다.

INI스틸과 동국제강, 세아제강, 동양석판 등 이른바 잘 알려진 1군 업체들 외에도 용접봉 분야의 현대종합금속(대표 이봉주), 철구조물의 (주)경한(대표 강진수)과 제일테크노스(대표 장명식), 내화물의 조선내화(대표 한종웅) 등이 대표적인 업체들이다.

이밖에 쌍용머티리얼(대표 양재균)은 포스코에서 나오는 슬래그를 이용해 만든 자석으로 전자산업을 업그레이드 시켰고 한일시멘트(대표 정환진)와 한국시멘트(대표 이익희)는 포스코 부산물인 수재슬러그를 활용해 고강도의 고로시멘트를 생산해 내고 있다.

이 시멘트는 일반 시멘트와 같이 건설자재로 쓰이지만 강도가 훨씬 강해 고급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BOC가스(공장장 박광서)는 공단내 유일한 외국인 100% 투자회사로서 산소와 질소, 아르곤 등 다양한 가스를 포스코 등에 공급하고 있다.

27일 철강산업단지 관리공단이 잠정 집계한 공단업체들의 작년 매출총액은 6조5천억원이다.

이는 개별 업체들의 결산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정확해지겠지만 조사관계자들은 1조원을 초과한 7조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년(2001년) 실적보다 18%가 늘어난 것이고, 연초 계획보다도 15%나 초과달성한 셈이다.

문제는 수출이 줄고 있다는 것. 작년 한해 동안 공단 업체들은 12억6천만 달러어치를 해외로 내보냈다.

재작년에 비하면 27%나 줄어든 것이다.

미국과 EU 등의 세이프가드 장벽을 넘지 못한 탓이다.

새해들어 주요 철강 소비국들의 무역 장벽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업체들을 더욱 긴장케한다.

포스코가 민영화되면서 공기업 시절의 굴레를 상당 부분 벗어 던지면서 일부 공단 업체들이 전에 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포스코가 책임지던 분야 중 일부는 자신들의 책임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공단내 모 대기업의 임원은 "포스코의 그늘에 가려 있기도 했고, 이를 은근히 즐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여간한 부담이 아니다"며 단순한 기업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다른 업체의 한 임원도 "우리가 대지역 관계나 이른바 '지역협력사업'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본사도 없는데…"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포항 시민들이 공단 업체들을 보면서 불만을 가지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200여개 공단업체 중에서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 특히 중견규모 이상의 업체들은 몇 안된다.

본사를 여전히 포항에 두고 있는 포스콘, 포항강판, 포스렉 등 포스코 계열사를 빼면 외지본사 업체들의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역에는 몇 푼 되지 않는 직원들의 월급만 흘려주고 알짜배기는 모두 서울본사로 가져가는 구조는 지역자금 역외 유출이라는 문제와 함께 지역경제의 체질을 허약화 시킨다는 점에서 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기업으로서 존재하고 역할해야 한다는 이들 업체들의 지론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공단 업체들의 지역기여도가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포항에 존재했던 '포항 대(對) 포철'의 논리가 이제는 '포항과 공단'의 논리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업체들의 변화된 자세를 시민들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공단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향토 출신 한 기업인의 이 말은 공단 업체들이 지역을 향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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